'장정일의 공부' 를 읽고
2022년을 되돌아 보며 , 또 다시 연말이라는 시간의 흙탕물 속에 서있다.
또 한 해가 가고 오네요
당신 나이가 되면 모든게 선명해 질까요?
아니요.
그럼 더 혼란스러워지나요?
그냥 빨리 흘러가요. 비 많이 왔을 때 흙탕물 처럼.
- 영화 정사 중 에서.
매년 연말연시면 시간이라는 흙탕물을 서 있는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핵심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거치게 되는 기본적 심리변화 4단계를 거치는 것처럼
연초에 대한 부정-그리고 분노-체념-인정의 단계를 밞아 치유의 시간이 온 것이다.
[장정일의 공부] 를 읽고.
자신이 가진 주관과 관점을 한 두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 것.
사회란.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개인들의 의식의 합이다.
교양이란. 지식의 최전선이다. 각 시대가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든 이념체계다.
정의란 무엇인가. 강자의 이익이 정의다.
IMF란. 재벌이 외국으로 부터 차관을 빌려쓰고 그것에 대한 지불보증을 국가가 지는 정경유착과정에서 부도가 난 것이다.
교육이란 : 가치체계의 합리적 변화를 위한 기나긴 과정이다.
좌파란 : 박노자는 시대해방적이며 발전적인 경향을 주장하고 따르는 사람. 다시말해 현실에 대한 부정과 비판정신을 가진 사람모두를 좌파라는 세례를 배푼다.
중용이란. 장정일 작가와 모멸감으로 알려진 김찬호 작가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장정일 작가 역시 중용이 미덕인 우리사회의 요구에 적절히 순응하며 언제나 중용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그러나 알게되었다. 내가 '중용'의 사람이 되고자 했던건 우리사회의 가치를 내면화 하고자 했던것도 있지만 실제로는 무식하고 무지했기 때문이였다.
어떤 사안에서든지 그저 중립이나 중용만 취하고 있으면 자신의 무지가 드러나지 않을 뿐더러,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로까지 떠받들어진다. 중용은 무지의 산물이다. 중용은 본래 칼날위에 서는 것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아는게 없는 것을 뜻할 뿐이다. 그러니 중용에는 아무런 사유도, 고민도 없다. 허위의식이고 대중기만이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무지의 중용을 빙자한다.
김찬호의 ‘모멸감’ 에선 중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아직 나타나지 않는 것이 중(中) 이라고 하고,그것을 행동으로 드러내되 절도에 맞도록 하는 것이 화(和)라고 한다. 중이란 천하의 기본 큰 근본이요,화란 천하에 두루 통하는 도리다.” 어떤 감정도 아직 드러나지 않는 상태가 ‘중’ 인데 영어로는 Centrality 또는 equilibrium 이라고 번역한다.그것은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닌 모든 감정을 응축하고 있고 어떤 감정이라도 발현시킬 수 있는 상태다. 알고 가만히 있는것과 모르면서 가만히 있는 것의 차이랄까.
따라서 중심 잡힌 사람이란 희로애락의 감정을 모두 균형 있게 품고 있으면서,상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다.억울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분노할 줄 알고,장례식장에서 슬픔을 나눌 줄 알며,그러다가도 경사가 난 집의 잔치에 참석해서는 온 마음으로 축복할줄 알며 음악을 들으면 즐거움에 빠져들줄 아는 것. 어느 한 감정에만 매여살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인생이 풍요롭다.
유흥준 교수의 '안목'을 읽고.
알아보는 이가 없으면 탁월한 작품도 외로이 잊힐 뿐,
유홍준 교수가 알려주는, 안목의 소중함을 깨우쳐 준다.
안목, 오랜만에 듣는 말이라 책을 사기가 망설여졌다. 조선을 넘어 한국근현대미술까지 알필요가 있을까 하는 막연한 거부감도 한 몫했다.
허나. 제목이 주는 묘한 여운이 너무 커, 오랫동안 바라보다 지갑을 열었다. 세상 모든 가치는 이윤과 효율로 평가할 수 있다는 믿음에 조금 비켜선 나이때문은 아닐까 하는 변명과 함께.
예술을 보는 안목은 높아야 하고
역사를 보는 안목은 깊어야 하고
현실을 보는 안목은 넗어야 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은 멀어야 한다.
과거를 깊게 들여다보고
당대를 정확하게 꿰뚫어보며
미래를 길게 내다보는 안목이
더욱 귀한 오늘이기에 위의 글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적지 않는 나이다.
남에게 구속받지 않고
본뜨는 경향은 다시는 없고
여러곳의 장점을 모아서 때론 빼끼고
때론 변통했을지언정
스스로 개성을 성취하는 과정정도는
있을게 아닌가.
이젠 스스로 일법을 이루었으니
나만의 안목과
성공이 아닌 성장의 스토리가가
서사와 함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영민 교수의 ‘공부란 무엇인가’
사이먼 시넥의 ‘Start with why’는 왜라는 화두를 던진다면 김영민 교수는 ‘What’의 화두를 던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책 이란 무턱대고 읽을 것이 아니라. 삶의 질문에 답을 유추할 수 있는 책을 찾아 읽어보며 읽는 것이다.
그 이유를 논한다면 김영민 교수의 문장을 빌려본다. "정독할 부분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자기만의 질문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 것이다. 그 질문에 답하는 문장들이 바로 정독할 부분들이다." 본문 중에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문장이다.질문을 하나 품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서는 것은 책을 잘 읽는 방법이자, 삶을 깊게 살아내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2023년 어떤 질문으로 나와 조우할 것인가!.
'우리 인생의 행복한 기억은 대부분 '즐겁게 놀았던 순간' 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의 대부분은 여행이라는 것도 알게 됐구요. 그러니까, 우리는 더 잘살기 위해 조금 더 놀아야 할 것이고,더 행복하기 위해 더 여행해야 할 것입니다.'
거두절미 하고 이젠 영어를 해야 겠다. 여행과 나의 행복을 위해.
작금의 정치에 관하여
10.29 참사와 추락하는 경제를 여전히 지켜보고 있다.
나는 일종의 자구책으로 낙관주의를 선택했다. 현실이 어둡고 혼돈스러운데 생각마저 비관적이면 이 정권의 기나긴 시간을 어찌 멀쩡한 상태로 견뎌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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