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행
2019년8월
독일 사람들은 평소 "In Ordunng" 이란 말을 자주 쓴다고 한다. 직역하자면 제대로 질서있게 갖추어져 있다 라는 의미다. 좋다. 잘 됐다 등의 완료 내지 긍정을 표하는 말인데 모든 게 원리원칙대로 질서 있게 잘 돌아가는 독일인의 일상생활을 표현하는 말이다. 독일의 도시는 이렇다할 눈에 확들고 끌리는 매력적인 뭔가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것은 독일은 강력한 왕권중심주의에 입각하여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처름 그 궁전만 지나면 아무것도 볼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지방군주가 여럿이서 각 지방을 통재하여 저마다의 고유한 색깔의 궁과 정원들이 즐비한다. 그 이유는 중앙집권적 왕권응 중심으로 한 나라가 아니라 각 지방 영주들에 의한 지방분권적 통치체제를 바탕으로 각 지방마다 독립적인 중심권력이 존재했다. 이는 흔히 군주의 건축양식이라 부르는 바로크 양식의 호화로운 궁전과 정원이 전국 각처에 즐비해 있는 현상을 설명하는 배경이 된다. 그래서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 다른 나라의 수도처름 모든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옛 프로이센의 왕도로서 동부 독일을 대표하는 중심도시 일 뿐이다.
독일의 표지판.
독일 여행 중에 만나는 여러 포지판 중 눈여겨 볼 대표적인 것으로 반호프슈트라쎄(Bahnhofstrabe) 가 있다. 반호프슈트라쎄는 '역전거리'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이 방향을 따라가면 어떻게든 기차역이 나올 게 분명하다.이 표지판을 만나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기차역이 있다. 또한 역은 대부분의 구도심의 역사로 지구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다.
유스호스텔.
독일의 유스호스텔 수준은 최고수준이다. 유스호스텔은 독일어로 유켄트헤르베르게(Jugendherberge) 라 부른다. 원래 국토순래 도보여행의 일환으로 순수 민간 차원에서 지칭하고 중세시대부터 유랑자나 순례자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공익시설이었지만 19세기 부터 청소년들로 하여금 조국애를 느끼게 하고 옛 성을 개조하여 청소년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것으로 비롯된다.
독일전통 빵.
독일의 아침은 브뢰첸으로 시작한다.
차범근도 그랬지만 독일의 아침 동네 거리는 장바구니를 든 남자들이 자주 눈에 띄는데 그건 빵을 사러 나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집에서는 커피를 내리고 식탁에 접시며 나이프를 챙겨놓는데 그건 아내들의 몫이다. 브뢰첸 두 개정면 어른 1인 한 끼 식량으로 딱 적당한 양이다.
독일 여행회화
항공권 예약
스카이스케너를 이용하지 않고 직항노선인 아시아나 그리고 대한항공 두 곳을 검색했다. 최초 검색할 당시 직항노선은 아시아나 보다 대한항공이 약 30만원 가량 저렴했다. 일년 전에 항공권을 예매하는 것이 비용을 조금이라도 더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아 일찍 예약을 서둘렀다. 그것이 2018년 12월의 일이다. 그러나 여행준비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 겠다고 마음을 먹고 2019년2월마지막날, 다시한번 항공권 비용을 조회해보니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금액이 차이가 났다. 왜일까? 여전히 의문스럽지만 그 이유를 사사껀껀 기록하는것 보단 결과만 이곳에 공유하고자 한다. 그래서 난 서둘러 기존 예약을 취소하고 새로운 금액으로 다시 예약을 했다.
항공권 비용 비교
고속철도예약
독일의 기차비용역시 서둘러 예약을 하면 비용이 저렴하다고 판단하여 독일 철도예약사이트에 들어가 신속히 예약을 진행했다. 과연 3,4월 달에는 얼마의 비용차이가 나는지 다시한번 확인해 볼 예정이다.
최종비용
금액비교
금액비교
결제전
현재까지 들어간 비용을 정리(항공료,숙박료,철도)
프라하 에서 뮌헨으로 가는 방법
독일이동경로
프라하 to 퓌센 (로맨틱가도)
3일간의 렌트카 비용.
유로카가 Hertz보다 금액이 쌈.
이제 길을 나서다...
여행 가정의 온기가 되다.
삶을 바꿀수 있는 시작점은 바로 가족이다.
일상이 시작되는 공간이자 마음의 휴식처는 바로 가족 이어야 한다. 함께하는 공간에서 불편함이 없어야 하며,함께하는 시간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야 한다.온기를 복돋는 곳은 다름아닌 가족과 함께다.6개월 가량을 틈틈히 준비하고. 큰아이 대학가기전 마지막 여행이라 나에게 더 큰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다.가족과 함께한 11일간의 일정. 잠시 기록으로 남겨본다.
인천공항 → 프랑크푸르트 → 베를린 → 드레스덴 → 체코 프라하 → 뮌헨 → 로맨틱가도 → 프랑크푸르트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새벽수영을 가려고 했지만 전날 먹은 와인 탓인지 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역시 술을 한 병 먹고 자니 밤이 더 덥다. 출발 무렵 아내와 나는 택시를 두 대나 불러 KTX 도심공항 터미널로 이동했다 한적한 공간, 신속한 출국심사 편의성이 돋보이는 곳 이다. 수화물까지 한 번에 Check-in 하여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광명역에서 출발하는 리무진 버스는 다른 리무진과 달리 중간에 서질 않는다. 고속도로로만 이동하니 소요시간도 빠르지만 차가 정차하지 않아 더욱 편리한듯 하다. 40분 만에 제2터미널에 도착하였고 새로지은 터미널이라 그런지 한 적하게 쇼핑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TUMI 의 지갑 두 개 와 큰아이 화장품 그리고 작은아이 손가방까지 그렇게 쇼핑을 끝내고 우리는 그렇게 비행기에 탑승했다. 한 가지 탑승 전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아이들이 지하1층에서 떡뽁이를 먹고 탑승하려 했지만 지하1층을 찾지 못하고 분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벌써 비행시간만 9시간이 넘었다
프랑크프루트
프랑크프루트 도심 지도
우리가 독일여행을 처음 시작하는 곳이 바로 프랑크프루트다. 차범근(차붐)의 도시이자 유럽에서 가장 높은 빌딩 10개중 4개가 모여있는 금융도시. 파이브 엘레멘트 라는 호스텔에서 출발하여 하루의 여행을 시작한다. 출발점은 바로 뢰머광장. 호텔에서 뢰머광장 까지는 걸어서 18분 지하철로 14분이다.
1. 주요 볼거리
뢰머 광장
구도심의 심장이자 프랑크푸르트 여행의 중심 프랑크푸르트는 고층 빌딩과 시간의 향기를 품은 중세 건축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고층 빌딩이 프랑크푸르트의 발전과 역동성을 상징한다면 고건축은 이 도시의 오랜 이야기를 전해준다. 베르크 뢰머플리츠은 옛 건축이 몰려있는 구도심의 심장이다.
광장의 역사는 저 멀리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50년 경 이곳에 로마군이 주둔했다. 뢰머Romer는 독일어로 로마인이라는 뜻이다. 뢰머 광장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물은 시청사이다. 지붕이 계단식으로 작아지며 뾰족하게 올라간 붉은 건물 세 채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1405년 귀족의 저택을 사들여 시청사로 개조하였다 1562년 가운데 건물에서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2세의 대관식과 축하 연회가 열렸다.
시청사 2층 황제의 홀에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52명의 초상화가 전시 되어 있다. 또 뢰머 광장의 중앙에는 1543년에 세워진 정의의 분수가있다. 분수에는 검과 저울을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ustitia의 RondR 동상이 있는데, 여신의 이름에서 분수의 이름과 정의를 뜻하는 영어 단어 저스티스 Justice가 유래했다.
광장을 중심으로 알테니콜라이 교회, 파울 교회,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괴테하우스, 마인강 등 주요 관광 명소 시청사가 5분 내외 거리에 펼쳐져 있다. 광장엔 관광안내소가 있다,
쉬른 미술관 Schirn Kunsthalle Frankfurt 쿤스트할레
프랑크푸르트의 자존심
뢰머광장과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사이에 있는 멋진 현대미술관이다 뢰머광장은 서울로 치면 광화문광장 같은 곳이다. 2차 세계대전의 아픔을 딛고 경제 부흥에 성공한 프랑크푸르트는 이제 물질이 아니라 정신의 풍요가 필요했다 이때 프랑크푸르트가 선택한 것이 미술관이었다 장소는 프랑크푸르트의 자존심이자 이 도시의 역사가시작된뢰머 광장이었다 이렇게 하여 1986년 건축공모전을 통해 미술관이 들어섰다.
그리고 뢰머 광장,쉬른 미술관 프랑크푸르트 예배당까지 150m에 이르는 긴 열주 회랑이 만들어졌다. 열주화랑을 걷다보면 중간에서 커다란 아트리움 홀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쉬른 미술관이다.
미술관 외에 음악학교, 미술공방 아트숍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른은 독일어로 푸줏간 또는 고기 써는 곳이라는 뜻이다 연합국의 폭격으로 파괴된 푸줏간 자리에 미술술관이 들어서면서 이 같은 이름을 얻었다
→ 운영시간 화~일 10:00-19:00, 휴관 월요일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 Kaiser Dom 카이저 돔
황제의 대관식이 이곳에서 열렸다 1562년부터 230년 동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선출하고 대관식이 열린 고딕 양식 성당이다뢰머광장에서 동쪽으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다.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은 시내에 있는 어떤 교회보다도 큰 규모를 자랑한다. 정식 명칭은 성 바톨로메오 성당Kaiserdom St. Bartholom äus이지만 황제의 대관식이 이곳에 열렸기에 흔히 황제의 성당, 즉 카이저 돔으로 불린다.
카이저 돔을 줄여서 그냥 돔이라 부르기도 한다. 9세기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19세기 말에 이루어진 발굴 조사에 따르면 7세기부터 몇 세기에 걸쳐 증축과 재건축이 반복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와 같은 고딕 성당의 모습을 갖춘 것은 1550년이다 세계2차대전 당시 6차례 공습으로 크게 파괴된 것을 전후에 대대적으로 복원했다.
황제의 대관식을 거행한 성당답게 건물안은 화려한 제단과 종교 예술품이 있으며 오래된 벽화의 흔적도 찾아 볼 수 있다. 이 성당은 높이가 무려 95m에 이르는 첨탑으로 유명하다. 탑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는데 3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야 다다를 수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프랑크푸르트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득 담을 수 있다. 성당 입장은 무료이나 탑 전망대와 성당 박물관은 유료이다
찾아가기 : 뢰머 광장에서 Rome berg와 Krönung weg/Markt 도로를 경유하여 동쪽으로 도보 3분
괴테하우스 & 박물관 - Frankfurter Goethe-Haus
독일의 자랑, 괴테의 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파우스트,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등 . . . 괴테는 1749-1832는 소설가였고 시인이었다. 극작가였고 법률가였고 정치가였다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독일의 자랑이다.그는1749년 8월 28일 프랑크푸르드에서 태어났다. 귀족 출신은 아니었지만 집안은 꽤 유복했다.어머니는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다. 그는 괴테하우스에서 태어나 16세 때까지 이곳에서 자랐다.
괴테하우스는 1733년 할머니가 처음 구입하였고, 1755년.아버지(1710-1782) 요한 카스파르 고리가 크게 보수를 하였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라이프치히와 스트라스부르로 떠난 뒤 20대 중반 변호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괴테하우스에 살았다 7년 전쟁1756-1763 때는 프랑스에 점령되어 프랑스 군정관의 관사가 되는 불운을 겪었으나 괴테는 1795년까지 이 저택에서 살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이 주 택의 물건을 미리 안전한 곳에 보관해 피해를 최소화하였다. 저택도 전후인 1949년 다시 재건하였다. 하우스는 모두 4층독일식으로는 3층으로 이루어져있다 방만해도 약 20개에 이른다 저택을 살펴보면 그와 그의 가족이 얼마나 부유한 삶을 살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수많은 그림, 가구 조각상 등 볼거리가 다양하므로 방문하길 권한다.
특이한 것은 방마다 벽지를 달리하여 벽지 색깔에 따라 이름을 붙인 점. 자세히 설명해주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 관람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저택 옆에는 괴테의 가족의 유품이 전시된 박물관이 있다
영업시간 월~토10;00-18;00일 10;00-17;30, 입장료성인 7유로, 오디오 가이드 3유로
독일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괴테 1749-183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독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문학과 음악에 심취했으며, 열세 살에 이미 시집을 낼만큼 문재를 날렸다 법률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지만 그는 문학에 더 깊은 관심을 보였다.
1774년 20대 중반이 된 그는 자신의 짝사랑 경험과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자살한 친구 이야기를 바탕으로 편지체 소설 '젊은 베르트르의 슬픔' 을 썼다. 그는 이 소설로 하루아침에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1775년 괴테는 고향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독일 중부의 소도시 바이마르로 향했다. 그는 바이마르 공국 1741-1918의 재상이 되어 작은 공국을 이끌었다 1786년에는 3년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한 뒤 바이마르로 돌아왔다. 이탈리아 여행은 그에게 고전주의 예술관을 확립시켜주었다 이후 괴테는 독일의 또 다른 대문호 쉴러1759-1805와 교류하며 절정의 문학 세계를 보여주었다.
파우스트, 이탈리아 기행,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등 그의 인생을 빛내준 명작들이 모두 중후반기에 쏟아져 나왔다. 그의 수많은 작품은 독일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시 <마왕>과 <들장미>는 슈베르트에 의해 독일의 대표 가곡으로 다시 태어났고, 당대 최고 작곡가 베토벤은 희곡 <에그몬드>에 붙이는 서곡을 만들었다.
1808년 천하의 영웅 나폴레옹이 괴테를 만났다 그는 괴테를 만난 후 이런 말을 남겼다 "여기에도 사람이 있었군" 당대의 영웅이 또 다른 영웅을 알아본 것이다.
하우프트바헤와 차일거리 Hauptwache & Zeistraße
100년 넘은 카페와 프랑크푸르트 최대 번화가
하우프트바헤는 시내 중심가 S/U반 하우프트바헤역 근처에 있는 약 300년 가까이 된 바로크 양식 건물이다. 원래 프랑크푸르트 시 의 경비를 담당하는 군대의 위병소였다. 이후 경찰서로 사용되다가 1904년부터 카페로 바뀐 뒤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2차 세계대전때 연합군의 공습으로 훼손되었으나 전쟁 후 건물을 크게 수리하였다. U반과 S반이 모두 정차하는 지하철 역이 들어서면서 하우프트 비비 앞 광장이 번화가로 자리 잡았다.
차일거리는 하우프트바헤북동쪽에 위치한 보행자 전용도로이다. 갤러리아 백화점과 유명 SPA브랜드 매장과 각종 상점이 밀집한 프랑크푸르트 최대 번화가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 매장이 이곳에 모여 있고 자동차가 다니지 않아 산책을 하거나 쇼핑하기 편하다.
찾아가기 : 괴테하우스 쪽으로 걸어서 5분
클라인마르크 트할레 - Kleinmarkthalle
차범근이 애용한 재래시장
독일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프랑크푸르트에도 공공 시장이 발달했다. 농민이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팔기도 했지만 상인들이 곡물, 채소, 생선, 육류를 받아와 파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공공 시장의 흔적은 거리 이름에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마르크트Markt는 독일어로 시장을 뜻하는데, 거리 이름에 'markt'가 붙어 있으면 예전엔 그 근처에 시장이 있었다는 뜻이다.
구시가지에 있는 베크마르크 EWeckmarkt, 코르마 EKommarkt가 좋은 예이다. 하지만 공공 시장은 공터에 가건물이나 천막을 치고 열리는 게 대부분이어서 늘 위생 문제가 대두되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프랑크푸르트 법원은 시장의 불결한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상점을 한 건물에 입주시키도록 했다.
프랑크푸르트의 대표적인 재래시장 클라인마르크트할레도 이때 생겨났다. 1879년 네오 르네상스 스타일로 지은 건물이 1944년 연합군의 공습으로 무너지자 1954년 재건. 클라인마르크트할레에는 채소, 과일, 육류, 그리고 꽃을 파 주는 화원 등 60여 개 가게가 입주해 있다.
차범근이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소속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자주 이용하던 정육점도 이곳에 있다. 가게 입구엔 소꼬리, 불고기라고 한글로 적혀있어 눈길을 끈다. 즉석 간식거리를 파는 가게도 있다.
유로타워와 마인타워 Eurotower &Mein Tower
유럽중앙은행과 전망이 최고인 고층 빌딩
프랑크푸르트는 유럽을 대표하는 금융 도시이다. 독일에서 가장 높은빌딩 10개가 모두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유로타워는 시내 중심가 빌리 브란트 광장Willy-Brandt-Platz에 있는 고층 빌딩이다 1977년에 지어졌으며, 프랑크푸르트의 마천루를 이루는 건물 중 하나이다 모두 40층으로 이루어져있으며, 높이는 148m이다. 프랑크푸르트엔 유로타워보다 높은 빌딩이 많이 있지만 이 건물이 유명한 까닭은 유럽중앙은행Europäische Zentralbank. EZB이 입주해 있어서이다. 유럽중앙은행이 입주한 것은 1998년 6월 1일이다.
유럽 통합을 상징하는 건물로 건물 앞 잔디밭에 유로화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서 있다. 이 조형물은 포토 존으 로 유명하다. 건물 지하에는 레스토랑과 카페 등이 있다 마인타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4번째로 높은 빌딩이다 2000년에 완공되었으며, 지하 5층, 지상 56층에 높이는 200m이다 독일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다 여름철에는 밤 11시까지금, 토 운영해 야경을 즐기기에 좋다.
2. 음식점
구글지도에서 검색
당일 검색해도 충분 함. 특히 햄버거 , 수제 맥주 집은 넘처나서 적을수도 없음. ㅋ
본 글은 제가 여행할 코스를 [설렘두배 독일/이인정 지음/디스커버리미디어] 의 책을 발췌하여 개인적 블로그 형태로 기록한 내용입니다. 복재시 해당 출판사 의 copylight 를 삽입하시기를 요청 드립니다.
베를린
주요볼거리 - 미테 지구 Mitte
베를린의 샹젤리제 - 브라덴부르크 문
야경이 더 아름다운 베를린의 개선문
베를린뿐만 아니라 독일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베를린은 30년 전쟁(1618-1648) 독일을 무대로 벌어진 유럽의 신.구교 사이의 종교 전쟁 후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도시가 커지자 새로운 관문이 필요해졌다.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평화를 상징하는 새로운 문을 세우고 싶었다.왕의 명을 받은 건축가 카를 고트하르트 랑한스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출입문에서 영감을 얻어 브라덴부르크 문을 디자인했고, 1791년 완공되었다.
문 위에는 콰드리가 4두마차와 평화를 상징하는 그리스 여신 에이레네 조각상이 있었다. 그래서 평화의문이라는 뜻을 가진 프리든스토어 Fredenstor라 불리기도 한다. 1806년 나폴레옹 보나파르드는 프로이센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브란덴 부르크 문을 통해 베를린에 입성했다. 이때 나폴레옹은 전리품으로 콰드리가와 여신상을 파리로 가져갔다. 나폴레옹에게 굴욕적인 개선식을 허락해야 했던 프로이센은 오랜 기다림 끝에, 1814년 파리를 점령했다. 이때 나폴레옹의 전리품들은 다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프로이센은 달콤한 승리를 자축하며 조각상에 독수리와 참나무 잎을 두른 철십자가 깃발을 추가하고, 평화의 여신 에이레네를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로 바꾸어 장식했다.
전후 냉전의 시기에 동독과 서독은 이 문을 통해 자유롭게 왕래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생기면서 1961년부터 브라덴부르크 문은 장벽에 만들어진 검문소 8곳 중 하나가 되었다. 통일 전까지는 일반인들이 쉽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1989년 12월 독일 통일 이후 브란덴부르크 문은 분단의 상징에서 통일과 평화 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베를린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밤에 보면 더욱 멋져 베를린에서 야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침묵의 방 Raum der Stille, 라움 데어 슈틸레
침묵의 소리를 듣자.
1994년 10월 브란덴부르크 문에 조성된 방이다. 이 방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폭력과 제노포비아이방인에 대한 혐오 현상에 저항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모든 국적과 이념, 인종과 종교를 껴안을 수 있는 인류애와 관용을 상징한다. 몇 명 들어가지 못하는 작은 방이지만 이 방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침묵 속에서 짧게나마 평화에 대해 명상하고 기도하게 된다. 방 안 벽에는 평화를 뜻하는 단어가 30여개 언어로 씌어져 있다. 한글로 쓴 평화도 보인다.
베를린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브란덴부르크 문 남쪽에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학살한 홀로 코스트 희생자 600만 명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종전 60주년을 맞아 2005년에 조성되었다. 모두 2711개의 콘크리트 조각물이 횡렬로 87줄, 종렬로 54줄을 이루고 있으며, 콘크리트 조각물의 크기와 높이는 각각 조금씩 다르다. 추모공원의 바닥도 평평하지 않아 수많은 조각물이 모두 똑같은 육면체이지만 각각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무리지어 있는 조각물을 보고 있으면 강렬한 내면이 느껴지며 압도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곳을 설계한 이는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다. 그는 방문객이 들어서는 순간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공기를 느낄 수 있게 디자인했다. 흔히 생각하는 추모 공원처럼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나기념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2711개의 조각물은 마치 석관이나 비석처럼 느껴져 그들이 겪었을 죽음의 공포가 가슴 깊이 전해진다.
지하에는 방문자센터가 있다. 나치 독일에 희생된 유대인들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곳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참혹한 역사를 아프게 느끼게 해준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포츠다머 광장 쪽으로 조금만 가면 된다.
운터 덴 린덴 - Unter den Linden
베를린의 세종로
운터 덴 린덴은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시작하여, 박물관 섬으로 연결되는 슐로스 다리Schlfbrike까지 길게 놓인 일직선의 길을 말한다. 이 거리는 베를린에서 가장 중요한 길이라 조성 당시엔 이름이 첫 번째 길 ErsteStraße이었다. 지금 도 그 중요성을 대변하듯 베를린 국립오페라, 국립도서관 베벨 광장, 홈볼트대학교 등 주요 관광지와 관공서 교육기관이 이길의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운터 덴 린덴이란 보리수 아래라는 뜻으로 17세기경 길 양 옆으로 보리수가 심어진 데서 유래했다. 왕정 당시엔 이곳에서 축하 퍼레이드가 벌어졌고 나치 정권 때에는 전당대회가 이 거리에서 열렸다.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엔 연합군의 공습으로 이 일대가 크게 파괴되었으나 모두 복구되어, 독일 분단 후 동베를린의 번화가 역할을 하였다. 1953년 6월에는 동베를린 노동자들이 공산 정권의 임금 동결에 항의하며 이곳에서 시위를벌이다 군과 경찰의 발포로 55명이 사망하고 106명이 처형 되기도 했다.
역사적 중심지였던 운터 덴 린덴은 현재 베를린의 척추와 같은 곳이다. 하차 버스 100번, 200번 타고 시작하면 된다 면적이 서울보다 넓다. 어디서부터 여행할지 걱정이 앞선다면 운터 덴 린덴 Unter den Under Friedrichstr 에서 시작할 것을 추천한다. 또 쇼핑하기 편리한 프리드리히 거리와 프랑조지쉐 거리프랑스 거리도 이 거리와 인접해있으므로 여행은 운터 덴 린덴에서 시작하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다
국가의회의사당
베를린의 멋진 전망을 한 눈에,
네오르네상스 양식 건축물로 독일연방의회의사당이다. 군소국가로 분열되어있던 독일은 1871년 독일제국으로 통일되었다. 연방정부는 파울 발로트의 설계를 바탕으로 1894년 연방의회 의사당을 건설했다. 20세기초 의사당은 연이은 수난을 겪는다.
1933년 2월에 방화 사건이 발생했는데 네덜란드 출신 공산주의자인 루페가 방화범으로 지목됐다. 단순 방화였으나 총리였던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은 이 사건을 하늘이 준 기회로 여겼다. 그들 은 코민테른의 계획적인 방화라고 주장하며 대대적으로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했다. 독일을 공포정치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1945년 의사당은 소련의 폭격으로 건물이 파괴되어 또 한 번 수난을 겪었다 의사당은 1990년 독일의 통일 의식을 치르는 장소로 쓰이면서 다시 존재감을 드러냈다. 대화재와 전쟁으로 소실됐던 돔을 1999년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리모델링하였는데, 이후로 의사당은 베를린의 멋진 전망을 즐기는명소가 되었다 방문객들은 나선형의 경사로에서 본회의장을 내려다 볼 수 있다.
국가의회의사당 방문하기 의사당 내부 관람은 미리 신청한 사람만 할 수 있다 예약은 의사당 건너편에 위치한 서비스 센터에서 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가능하다 인원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하루전이나 이틀 전에 는 예약해야 한다 여권을 꼭 지참해야 한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므로 예약한 시간보다 15분 일찍 도착하도록 준비하자
온라인으로 예약하기。
의사당 홈페이지 인적사항과 이메일 주소를 적으면 예약증이 메일로 온다. 이 때 예약증에 적힌 날짜와 시간을 링크된 주소에서 한 번 더 확인해야만 예약이 완료된다. 확인증을 인쇄해 의사당을 방문한다
벤츠 갤러리와 폭스바겐 그룹 포럼
Mercedes-Benz Gallery &Volkswagen Group Forum
자동차 마니아의 천국
자동차의 명가 메르세데스벤츠와 폭스바겐 그룹의 쇼룸으로 유동 인구가 많은 운터 덴 린덴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자동차 마니아들의 로망을 만족시켜주는 곳으로 이 두곳을 둘러봤다면 우리가 아는 유럽의 명차를 모두 섭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벤츠 갤러리에서는 벤츠를 자동차 명가로 우뚝 서게 해준 클래식 카와 최신 자동차, 그리고 미래형 콘셉트 카까지 구경할 수 있다. 또 고급 세단을 직접 시승할 수 있다. 갤러리 숍에서는 열쇠고리, 옷, 자동차 미니어처 등 관련 상품을 판매한다. 레스토랑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더욱 편리하다. 12시부터 15시까지는 점심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
폭스바겐 그룹의 쇼룸도 벤츠 갤러리에 뒤지지 않는다 폭스바겐 아우디 벤틀리, 람보르기니, 포르쉐 등에서 생산한 세단과 콘셉트 카 경주용자동차, 트럭, 엔진 등을 구경할 수 있으며, 원하면 일부 차량은 시승도 가능하다. 벤츠 갤러리와 마찬가지로 열쇠고리, 자동차 미니어처 등을 살수 있으며, 레스토랑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Gendarmenmarkt 젠다르덴마르크트
아름다운 광장과 멋진 명소들.
베벨 광장 남쪽에 있다. 젠다르멘이란 기갑병이나 군대를 상징하는 말이다. 그 의미는 좀 딱딱하지만, 젠다르멘 광장은 베를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손꼽힌다.
많은 베를리너와 여행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독일 돔Deutscher Dom과 프랑스 돔Französischer Dorn,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전용 콘서트 홀인 콘체르트 하우스로 둘러 싸여 있다. 독일 돔과 프랑스 돔은 18세기 초 예배당으로 지어졌다가 1780년부터 1785년 사이에 돔이 설치되면서 쌍둥이 건물이 되었다. 콘체르트 하우스를 중심으로 두 건축물이 대칭되게 어우러진 모습이 더 없이 아름답다. 건축적인 미학도 뛰어나지만 광장 분위기를 안정감 있게 해준다. 12월이 되면 트리와 조명으로 예쁘게 치장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젠다르멘 광장에서 열린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감이 솟아난다
찾아가기: U2호선 슈타드미테역Stadtmitte에서 도보 2분
젠다르멘 광장의 아름다운 명소들
- 독일 돔 Deutscher Dom
독일 민주주의를 위한 박물관
1708년에 지은 바로크 양식 교회 건축물이다. 광장 맞은편에 지어진 프랑스 교회와 구분하기 위해 신교회Neue Kirche라고도 불렸다 1785년 돔이 추가로 설치되었고, 현재는 독일 돔 혹은 도이쳐 돔이라 불린다.처음엔 베를린에 거주하는 칼뱅파 신도들을 위해 건축되었으나 점점 루터파 신도들이 늘어나 두종파가 함께 교회를 사용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된 것을 복원하기 시작하여 통일 이후인 1996년에 완성하였다 현재는 독일 의회와 민주주의의 역사를 알려주는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 프랑스 돔
자유의 꿈을 담은 교회
1685년 프랑스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주던 낭트칙령이 폐기되자 20-30만 명의 위그오늘은 프랑스를 떠나기 시작했다 당시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종교 자유를 보장하는 포츠담 칙령1685을 발표하였고 이에 칼뱅파 개신교도인 위그노들은 베를린과 포츠담 등지로 모여들었다. 베를린 인구의 1/401 위그노로 채워질 정도였다. 신도들은 파리의 위그노 교회를 모델로 1705년 베를린에 위그노를 위한 교회를 건설 하였는데 이 건물이 지금의 프랑스 돔이다. 후에 돔이 추가되면서 프랑스 돔이라 불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었으며, 교회 탑 안에 60개의 종이 있다. 프랑스 위그노의 역사에 대해 전시하는 위그노 박물관과 교회, 돔 전망대가 들어서 있다. 2017년 9월부터 계속된 재건축으로 박물관과 전망대는 이용할 수 없다 - 콘체르트하우스 베를린
Konzerthaus Berlin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콘서트 홀. 1821년 왕립극장으로 지어졌다. 통일 이전 동베를린 지역에 있던 아름다운 고전주의 건축물이었으나 세계대전 말미에 크게 파괴되었다. 동독 시절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고 1984년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 전용 공연장으로 문을 열었다. 통일 후에는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베를린Konzerthausorchester Berlin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콘체르트하우스에 1600석 대형 음악당과 400석 콘서트홀이 있다 콘체르트하우스 앞 광장에는 독일을 대표하는 극작가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Schiller의 동상이 서 있으며, 주변에서 종종 거리 음악가들의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베를린 Konzerthaus Orchester Bern은 정기적으로 공연을 연다. 또 매년 9월에 열리는 뮤직페스티벌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공연 티켓은 인터넷과 전화로 예매 가능하다
박물관 섬 Museuminsel
100년 동안 조성된 세계문화유산
슈프레Spree강은 베를린 시내를 적셔주며 굽이굽이 흐른다 브라덴부르크 문에서 운터 덴 린덴 거리를 따라동쪽으로 20분쯤 걷다 보면 이윽고 슈프레강 위에 떠 있는 박물관 섬이 보인다. 페르가몬 박물관, 구박물관 신박물관, 구 국립회화관, 보데 박물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 5개가 섬 북쪽 끝에 모여 있다.
예술과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1795, 1861, 재위 1840 ~ 1861의 명으로 궁중 건축가들에 의해 이곳에 박물관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1828년에 건설된 구 박물관을 시작으로 1세기 넘게 조성되었는데 100여 년에 걸쳐 발전해 온 현대 박물관 설계 과정을 잘 보여준다. 유네스코는 이런 건축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 199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박물관의 전시물은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유물부터 19세기 조각과 그림까지 다양하며, 각 박물관이다 다른 주제로 유물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5개의 박물관 가운데 페르가몬 박물관이 가장 많은 여행객이 찾아온다 박물관들은 2차 세계대전 때 큰 피해를 입어 지금까지도 복원 공사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 박물관 섬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마스터 플랜인 미래 프로젝트Project Zufunft도 진행 중이다.
여섯 번째 박물관이 될 제임스 시몬 갤러리가 2018년 개장을 앞두고 있다
박물관 섬의 명소들
페르가몬 박물관
Pergamon Museum 페르가몬 무
독일을 대표하는 박물관
19세기부터 독일이 발굴한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고고학 유물 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1910년 착공하여 1930년에 완성되었다. 독일을 대표하는 박물관이다. 그리스 로마 터키 이집트 등지에서 발굴된 거대한 고고학 유물들이 눈길을 끈다 그 중 페르가몬 대제 단은 제우스의 제단으로 이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페르가몬 박물관 이라 불린다. 가로 3564m, 세로 334m에 이르는 거대한 유물이다. 유물 한 쪽에는 올림푸스 신과 기간테스거인족으로 대지의 신 가01아의 자손들 와의 싸움이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바빌론의 성문이었던 이슈타르 문도 이 박물관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유물이 너무 커서 발굴에만 10년이 넘게 걸렸다고 하는데 실제로 보면 그 크기와 화려함에 압도당한다. 성문과 성벽은 120여 마리의 사자와 용, 오록스지금은 멸종된 소의 부조로 꾸며져 있다. 이슈타르 문의 오른편에는 함무라비 법전이 세워져있다 2023년 완공을 목표로 확장,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일부 전시실은 관람을 제한하고 있다.
구 박물관
Altes Museum 알테스 무제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유물 박물관 1830년 카를 프리드리히 슁켈의 설계로 박물관 섬에 최초로 세워진 박물관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신전을 연상시키는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입구 양쪽에 세워진 역동적인 청동 기사상이 매우 인상적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박물관 앞에서 탱크가 폭발하면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전쟁이 끝난 뒤 박물관 섬에서 처음으로 복원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항아리 암포라를 비롯해 아테네 병사들의 투구, 로마인들의 초상화, 황제와 신들의 대리석 조각 등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물이 중점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신박물관 - 이집트 미술과 선사 유물 박물관
건축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슈튈러의 설계로 1855년에 세워졌다 2차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는데 박물관 섬의 건물 중 가장 늦게2009년 복원되었다. 주로 이집트 미술과 선사시대의 유물이 보관 전시되고 있다. 수준 높은 이집트 유물이 있기때문에 미술사와 고대 이집트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꼭 방문하는 곳이다 대표적인 유물은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아케나톤 왕과 왕비 관련 유물들이다. 아케나톤 왕의 시대에는 사실적인 표현기법이 발달했는데 유물 가운데 왕비 네페르티티의 흉상Büsteder Notretete이 가장 인기가 많다. 수천 년 동안 전해져오는 왕비의 미모를 감상하기 위해 전시실은 항상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 밖에 청동기 유물인 베를린 황금모자Berner Goldut도 인기가 많다. 네페르티티의 흉상과 황금모자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구 국립미술관
프랑스 명화를 베를린에서 만나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슈튈라의 설계로 1876년 세워졌다 구 국립회화관이라 불리기도 한다 은행가이자 예술품 수집가인 요하킴 바게너가 기증한 262점의 유물로 출발하였으며, 포츠다머 광장에 위치한 신 국립미술관신 국립회화관과 구별하기 위해 구자를 붙인다 전시 작품으로는 독일의 조각가 요한 고트 프리 샤도의 <루이제 공주와 프리데리케 공주>를 비롯하여 고전주의조각품과 사실주의,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 등이 있다. 모네 르누아르 로댕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베를린 돔 -Berliner Dom 베를리너
베를린에서 가장 큰 교회
박물관 섬의 상징적인 건물로 베를린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회이다. 1465년 왕가의 성당으로 지어졌으며 호헨촐레른 왕가의유해가 건물 지하 납골당에 모셔져 있다. 처음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1905년 율리우스 카를 라슈도르프에 의해 거대한 돔이 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 건물로 재건축되면서 현재 모습이 되었다.
왕가의 교회답게 무척 화려하다 2차대전 당시 중앙 돔이 크게 파괴되었고, 1975년에야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다. 베를린 돔에는 독일의 오르간 장인 빌헬름 자우어가 만든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7269개의 파이프가 있는 이 오르간은 제작 당시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돔에 이르려면 270개의 좁은 계단을 올라가야 된다 돔은 베를린을 360도로 관람할 수 있는 전망대로 이용되고 있다.
일정
베를린 일정
숙소
'뮤지엄패스(museumpass)'를 적극 활용할 것. 베를린에는 3일 동안 수십 군데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둘러볼 수 있는 뮤지엄패스라는 것이 있다. 이것만 있으면 단 24유로(학생 12유로)에 55곳의 박물관들을 모두 출입할 수 있다. 박물관 한 곳의 입장료가 평균 10유로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드레스덴
베를린에서 동쪽으로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드레스덴 폭격의 비극을 품은 도시이자 엘베 강을 기준으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강 이남에 위치한 구시가지에는궁전 궁정 교회, 오페라극장 등 작센 왕국의 화려했던 과거를 보여주는 관광지가 모여 있다.
작센 왕가는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특히 아우구스트 2세 1670-1733의 예술과 문화 사랑은 대단했다. 드레스덴에 남아있는 문화유산 대부분이 그의 통치 시절에 탄생했다.강의 북쪽인 신시가지는 깔끔한 이미지가 강하다. 쿤스트호프 파사제를 중심으로 개성 있는 작은 가게들과동독 시기의 건물을 개조해 만든 카페와 술집이 몰려 있다. 이곳은 젊은이들의 놀이터 같은 곳이다. 어느 쪽이든 드레스덴의 한쪽만 만나고 돌아가기에는 너무 아쉽다. 최소 이틀은 머물면서 다양한 드레스덴의 모습을 만끽하길 추천한다.츠빙거 궁전
박물관이 모여 있는 아름다운 옛 궁전
초빙거 궁전은 엘베강 남쪽 구시가지 중심부에 있는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 건축물이자 드레스덴의 랜드마크이다. 가운데에 정원이 있고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 3곳에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작센의 선제후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선출할 권한을 가진 제후이자 폴란드의 왕이었던 아우구스트 2세 1670-1733는 드레스덴의 문회부흥기를 이끈 인물이다. 그의 치세기에 드레스덴은 독일의 피렌체'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예술과 문화의 도시였다. 아우구스트 2세는 1687년부터 2년 동안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면서 바로크 문화에 큰 감명을 받았다.작센으로 돌아온 그는 예술과 건축의 후원자로 적극 나섰다 1710년 공사를 시작해 1719년에 완공된 츠빙거 궁전은 그의 건축에 대한 열정을 잘 보여주는 걸작이다.
츠빙거는 방어용 성벽과 해자 사이의 공간을 이르는 말인데, 드레스덴 왕가는 레지덴츠 궁전 서쪽 성벽과 해자 사이 넓은 터에 궁과 정원을 짓고 츠빙거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궁정 건축가 마테우스 다니엘 푀펠만과 조각가 발타사르 페르모서가 설계한 궁전은 흠잡을 데가 없을 만큼 아름답고 화려하다. 궁전을 품고 있는 호수 같은 해자와 정원도 궁전 못지않게 아름답다.1945년 2월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으로 궁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건물의 중요도와 심미적인 가치가 높은 까닭에 동독 시절 소련군의 주도 아래 곧바로 복원을 시작하여 1963년에 옛 모습을 되찾았다.
츠빙거 궁은 입구 역할을 하는 몇 개의 파빌리온을 통해 입장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눈여겨 볼만한 입구가 정문인 크로넨 문 Kronen Tor, 크로넨 토어과 글로켄슈필 파빌리온 Glockenspiel pavilion이다. 해자를 지나 통과해야하는 출입구 크로네 문은 독수리 4마리가 수호하는 폴란드식 왕관을 이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아우구스트 2 세의 폴란드 왕 즉위를 기념하여 제작되었으나 독수리 장식이 폴란드 양식이 아니라 신성로마제국 양식이라서 그가 황제 자리를 노리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글로켄슈필 파빌리온에는 1933년 마이센 자기로 만든 편종차임과 사계을 설치했는데, 지금도 15분마다 차임이 연주된다. 당시엔 차임이 24개였으나 훗날40개로 증설되었다. 드레스덴 폭격 때에도 다행히 이 차임은 화를 입지 않았다. 현재 궁궐에는 옛 거장 회화관과 도자기 박물관 등 이름난 박물관 3개가 들어서 있다. 박물관을 제외한 공간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월요일은 휴무이며 아래의 세 곳은 반드시 들려야 한다.
- 고전 거장 회화관
- 도자기 박물관
- 수학 물리학 살롱
레지덴츠 성 Residenzschloss Dresden
보석, 판화와 드로잉, 동전으로 가득한 박물관들
작센 선제후와 왕들이 사용하던 궁전으로 츠빙거 궁전 동쪽에 있다. 수세기에 걸쳐 증축이 거듭되어 구조가 독특하고 복잡하다. 1701년 대화재로 궁이 소실되자 아우구스트 2세가 작센 주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재건을 명했다. 연합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궁을 1986년부터 복원하기 시작해 2013년에 완성했다. 일부 공간은2019년에 공개될 계획이다. 레지덴츠 궁에서 가장 유명한장소는 녹색방 이라고도 하는 그뤼네 게뵐베 Grünes Gewölbe이다. 거울방 이라고도 불린다.
아름답고 독특한 박물관이다·42 캐럿 녹색 다이아몬트금은보석흐로 만든 공예품 등 작센 왕들이 사용한 예술성 깊은 보물이 가득하다. 1시간에 단 100명만 입장 가능하며,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하는 것을 권장한다. 한글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면 더욱 깊이 관람할 수 있다.
녹색방예약
오스만 제국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터키관도 볼만하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오스만 유물 컬렉션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작센 왕들이 사용했던 갑옷 투구등이 있는 무기관 전시실이다. 실물 크기의 목제 말과 거대한 터키식 텐트를 통해 화려했던 오스만 문화로 장식되어 있어서 거울방 이라고도 부른다. 유럽 최고 수준의 보물이 가득한 아름다움이다. 이외에도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판화·드로잉 박물관 30만 점의 동전들을 보관한 동전전시실도 있다. 레지덴츠 성 안에 있는 박물관의 실내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군주의 행렬
레지덴츠 궁의 왕실 마구간 슈탈호프 외벽에 작센 왕 35명과 과학자, 장인, 예술가 등을 새겨 넣은 102m에 이르는 거대한 자기 벽화이다. 화가 빌헬름 발터가 작센을 다스렸던 베틴 가문 탄생 800주년을 기념해 1876년 처음 벽화로 만들었다. 건물 외벽에 그려진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손상이심해져 1904년 2만3천 개의 마이센 자기 타일에 그림을 새겨 다시 설치하였다.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에서도 살아남았다.벽화에 작센 공국의 군주 35명과 과학자·장인예술가 농부·아이 등59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화가 본인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드레스덴 폭격
드레스덴은 독일에서 7번째로 큰 도시이다 2차 세계대전말미인 1945년 2월 13일 영국과 미국의 주도 아래 나치 독일의 패망을 앞당기기 위하여 군용기 1천여 대를 동원하여 3일 밤낮으로 드레스덴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을 퍼부었다.이때 블록 하나를 날려버릴 만큼의 위력을 가진 블록버스터와 소이탄이 대량으로 투하되었다. 그야말로 융단폭격이었다 .이 작전을 지시한 사람이 영국 공군 대장이었던 아더 해리스였다. 그는
"적의 민간인도 적이다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적을 위해 흘릴 눈물은 없다"
아더 해리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한. 이 폭격으로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리는 드레스덴 시가지의 70%가 파괴되었다.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자 화상과 질식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집계된 사망자 수만 3만5천명이 넘었으며 실제 피해자 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본다 폭격의 이유는 드레스덴에 산재한 군수공장을 파괴하여 나치 군대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미군의 비밀문서에 따르면 공습 당시 드레스덴에는 독일의 전쟁 물자를 지원하는 공장 110곳과 5만여 명의 노동자가 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드레스덴엔 대대적으로 대적할 만큼 의미 있는 군수 공장이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유서 깊은 건축물과 교회 박물관이 불타고 파괴되었다 타격을 입은 문화유산 복원 작업은 최근까지 이어졌다.
드레스덴 시내교통
드레스덴 시내 대중교통은 S반 버스, 트람이 있다. DVB 티켓 판매기에서 교통권을 구매하거나 버스 기사 직접 표를 구입할 수 있다. 1회권인 아인젤파르트 Enatrn는 1시간 동안 드레스덴 도심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가격은 성인 23유로 , 6-14세 는 16유로이다. 4회권을 이용하면 좀 더 저렴하다 성인 82유로, 6-14세 52 유로이다.
단거리 티켓도 4회권이 있다 단, 환승이 불가하고 드레스덴 도심의 버스와 트람으로 4정거장까지만 이용 가능하다 가격은 55유로이다. 1일권인 타거스카르테Tageskarte는 평일, 주말 가격 변동이 없으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사용 가능하다. 가격은 성인 6유로 6-14세 5유로이다.
15세 이상 2명, 6-14세 어린이 4명까지 사용가능한 가족권 파밀리에타게 스카르테Familientageskarte는 9유로이다.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12시간 사용 가능한 나이트 티켓 도 있다. 가격은 7유로이다.
시티투어카드는 정해진 기간 동안 드레스덴 시의 대중교통을 무제 1 Travel Tip한 이용할 수 있으며, 65개 레스토랑과 가게에서 할인 혜택을 받을 드레스덴은 주요 관광지가 구시가지에 있다.
1일권 싱글 12유로, 패밀리 15유로, 2일권 싱글 17유로 패밀리 25 유로 3일권 싱글 25유로, 패밀리 33유로이다. 패밀리는 성인 2명·14세 이하 어린이 4명까지 해당된다. 뮤지엄 카드는 이틀 동안 드레스덴에 있는 14개 박물관 무료입장이가능하고 시티카드와 동일한 장소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대중교통은 포함되지 않는다. 2일권 가격이 22유로이다. 무리가 없다연 시티투어카드를 사지 않고 필요시 1회 교통권Erze tar를 구매하는 편이 낫다
드레스덴 도보 일정 코스
위 지도는 월면 Life 님의 개인블로그 (https://m.blog.naver.com/father_3/220934294648)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면 Life 님의 블로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