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과 관련하여

책을 읽기 전.

 

  1. 징비록은 어떤 책인가?
  2. '역사란 무엇인가(E.D 카)' 에서 역사책을 읽을때는 반드시 두 가지를 명심하라고 지적했다. 첫째 '역사책을 읽을 경우 항상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둘째  '모든 역사는 사유의 역사이며 역사란 사유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역사가가 그 사유를 자신의 정신 속에 재현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속삭이는 소리는 무엇이며 저자는 누구인가?

 

책 속의 질문.

 

  1. 선조 때 경인통신사의 문제로 진정 전쟁을 준비하지 못한 것인가?
  2. 임진왜란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3. 징비록적 역사관은 옳은 것인가?
  4. E.D 카의 질문을 변형하여 "영국의 식민지배로 근대화를 이룩한 인도가 있다면 일본의 식민지배로 한국의 근대화를 앞당겼을까?".

 


 

징비록이란 어떤 책인가?

징비록이라는 책은 유성룡에 의해 잘못된 과거를 징계하여 다시는 그러한 후환이 없도록 반성과 경계로서 집필한 책으로서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대한 비난보다 전쟁을 막지 못한 조선의 위정자들에게 각성으로 촉구한 책이다. 

 

 

 

저자가 말하는 속삭이는 소리는 무엇이며 저자는 누구인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역사의 사실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결코 순수한 것으로 다가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항상 굴절되기에 어떤 역사책을 집어들 때, 우리의 최초의 관심사는 그 책에 포함되어 있는 사실들이 아니라 그 책을 쓴 역사가에 관한 것 이어야 한다.    

 

카의 이야기에 맞춰본다면 우선, 류성룡이 진실로 전하고자 했던  숨은 진실은 자기 이익에만 급급했던 위정자들의 악의적 처신들을 고한것은 아닌가? 종모법, 작미법, 군적수포제의 폐해로 인해 정작 사병이 없었다는 것.

 

둘째, 류성룡누구인가? 임란 중 선조의 요동행을 적극 저지한 사람 중 대표적인 인물이였다. 영의정 겸 삼도 도체찰사가 되자 병역문제해결에 나섰다. 바로 부자증세인 작미법을 제정하고 양반에게도 병역의무를 부과한 속오군을 만들고 서자들과 노비들을 발탁했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밀고 나갔다. 허나 이런 공세는 전쟁이 끝나면서 그는 쫓겨가는 신세가 되었고 그가 실시했던 개혁조치들은 대부분 폐기되었다. 그 후 발생한 정묘효란 때에도 농민과 천민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바로 그것이 인과응보였다.

 

 

선조 때 경인통신사의 문제로 진정 전쟁을 준비하지 못한 것은 사실인가? 

 

먼저 선조 때 경인통신사의 사행과 조정의 대응방식의 논문에는 사행 이후 일본의 침략가능성이나 동향에 대한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의 상반된 견해와 그 갈등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잘 나와있다. 그런데 그야말로 부사 김성일(동인이며 유성룡 역시 이황과 함께 동인에 속한다)의 의견을 받아들여 아무런 대비를 못했기 때문에 임잰 왜란의 참혹한 피해를 자초한 것인가 하는 점은 좀 더 많은 사학자들이 연구할 부분이다.

 

황윤길(黃允吉)과 김성일(金誠一)의 보고

 

유성룡은 학파는 이황을 스승으로, 지역적으로는 영남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동인으로 분류된다.

대체로 김성일은 동인(東人)이고, 황윤길은 서인(西人)이었기 때문에 각기 자기 당을 옹호한 것이다. 왕이 김성일에게 사신으로 간 일을 잘하였다 하여 관자(官資)를 올려주고 점차 방비를 없앴다. 군관(軍官) 황진(黃進)이 김성일이 왕을 속였다 하여 죄를 물어 목 베기를 청하였다.

선조  24년(1591) 봄 3월, 통신사  황윤길(黃允吉) 등이 일본에서 돌아왔는데 왜국의 사신 평조신(平調信, 다이라 시게노부) 등도 함께 왔다. 황윤길이 그간의 실정과 형세를 치계(馳啓)하면서 "필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복명(復命)한 뒤에 상이 불러 하문하니, 황윤길은 전일의 치계 내용과 같은 의견을 아뢰었는데 김성일(金誠一) 이 아뢰기를, “그러한 정상은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황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인심이 동요되게 하니 일의 마땅함에 매우 어긋납니다”라고 하였다.


상이 하문하기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어떻게 생겼던가?” 하니, 황윤길이 아뢰기를,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과 지략이 있는 사람인 듯하였습니다” 하고, 김성일 은 아뢰기를, “그의 눈은 쥐와 같아서 두려워할 위인이 못 됩니다” 하였다. 이는 김성일 이 일본에 갔을 때 황윤길 등이 겁에 질려 체모를 잃은 것에 분개하여 말마다 이렇게 서로 다르게 말한 것이었다.

 

 

허나 김돈 교수의 논문 결론에서는 비록 상반된 견해라 할지라도 선조는 이미 전쟁이 일어날 것을 알고있었으며 조정신료들도 알고 대책마련에 착수하였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직전인 1583년 1월부터 7월까지 이른바 "니탕개의 난"이 발발합니다. 여진의 침입은 조선 건국이래 계속 반복되어 온 일이나 기껏해야 수백에서 3천을 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니탕개의 난은 최대 3만명에 달하여 임진왜란 이전 조선 전기를 통틀어 최대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의 침입은 두만강 일대 6진의 일부인 경성과 종성 일대에만 국한된 국지전이었고, 조선은 초반에 군사적 열세로 경원성이 함락되는 등 밀렸으나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결국 침입한 여진족들을 두만강 너머로 격퇴할 수 있었습니다.

위 내용을 서술하며 군사적 우선권은 니탕개의 난을 제압하는 쪽으로 병력을 이동시켰으며 왜군의 칩입은 전쟁이 아니라 난 정도로 생각하였다는 것이 논문의 요지였다.

 

임진왜란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거대한 악법 종모법과 군적수포제 그리고 과전법의 실패.

 

임진왜란의 진짜 실패는 무엇이었을까? 북방의 오랑케와 남방의 왜적을 대비하지 못한 선조의 잘못인가? 위정자들의 잘못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노비들의 분노였다. "양반들이나 나가 싸워라" 라고 외치며 실제 일본군의 절반이 조선의 노비들이란 말은 선조의 입에서 나왔다.

 

"적병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절반은 우리나라 사람들인데 사실인가?".

 

이것이 선조가 조선을 버리고 도주하려 했던 근본 원인이였다. 이렇게 된  주된 이유는 조선의 병역제도와 조세제도 그리고 신분제 때문이였다. _page 22. 

 

어쩌면 조선은 임진왜란 때 망한 것이라는 것은 많은 사학자들의 중론이다. 정도전이 구상했던 양인개병(모든 백성은 병역의무가 있는 사회)의 원칙은 어느듯 사라지고 상인들만 병역의무를 졌다. 광대한 농토를 가진 양반과 송곳 꽃을 땅 하나 없는 상인들은 똑같은 세금을 부과 받았다. 노비의 신분은 대대로 세습되었다. 일본군이 처들어오자 선조와 양반 사대부는 도망가기 바빴다. 이때 이미 조선은 객관적으론 망한것이였다.그러나 이런 위기때마다 출중한 지도자 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재상 류성룡이다. 류성룡은 조선의 지배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종모법이란 

부모의 신분이 서로다를 경우 자식의 신분은 어떻게 되는가? 양인과 천인이 혼인할 경우 모친의 신분을 따를 경우 종모법 또는 수모법이라 하고 아버지의 신분을 따르는 것을 종부법이라 한다. 종부법을 선택하면 노비 숫자가 줄어드는 대신, 종모법을 택하면 노비숫자가 크게 늘어난다. 

 

이에 고려시대에는 종모법이었으며 고려의 제도를 승계한 조선은 종모법을 실시했다.  조선 초 태종(이방원)때 다시 한번 논쟁이 붙었지만 종부법을 밀고 나갔으나 세종 때 종모법으로 다시 개악이 이루어진다.  

종부법의 개정은 신분제의 획기적인 진전으로서 이후 모친의 신분 때문에 눈물흘리든 수많은 천인이 구제받는 것은 물론이고 양인의 숫자가 대폭증가해 국가 재정이 튼튼해진다. 이에 태종은 사대부의 지휘를 확보하고 민의 손을 들었지만 세종은 사대부와 일반 백성의 이해가 충돌할 경우 양반의 손을 들어줬다. 그래서 맹사신, 권진, 허조 등이 종모법 환원을 주장했다. _ 33 Page  

 

임진왜란 때 선조가 도성을 버리고 북상길에 올랐는데, '선조수정실록'은 선조의 어가가 떠나자 백성들이 난입해서 형조를 불태웠다. 고 전한다. 형조는 모두 노비분서와 노비에 대한 소송을 관장하는 부서였다. 장예원과 형조에 불을 지른 이유에 대해 '선조수정실록'은 '두 곳의 관서에 공사노비의 문서가 있기 때문이었다'라고 적고 있다. 평소 신분제의 질곡에 시달리던 노비들은 임금 일행이 도주하자 대궐에 난입해 노비 문서에 불을 지른 것이다. 나아가 노비들은 일본군에 적극 가담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조선은 망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영의정 겸 도제 찰사 류성룡은 노비들이 군공을 세우면 양인으로 신분상을 시켜주고, 공이 클 경우 양반 벼슬까지 주는 면천법을 제정했다. _34 page

 

 

 

군적수포제란 무엇인가?

조선은 16세부터 60세까지 병역의무를 졌다. 중종 때 병역이 조세의 일종으로 바뀌며 1년에 두 필씩 군포를 내면 병역을 면제했다. 당연히 양반은 군적수포제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다 더해 한 사람이 도망가면 구족까지 찾아내서 군포를 씌우다가 그것도 안 되면 이웃에게 대신 씌웠다. 이웃 린 자를 써서 인징이라 불렀다.  이 모든 일들이 임진왜란 발발 9년 전의 일들이다.  

 

류성룡의 개혁은 무엇이였는가?

공납을 농토의 많고 적음에 따라 부과하는 작미법을 시행 오늘날로 치면 부자증세법을 제정하고, 양반에게도 병역의무를 부과한 속오군을 만들고, 서자들과 노비들을 발탁해서 승리를 거두면 신분을 상승시켜 주는 제도를 시행했지만 전란이 끝나자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여기서 작미법이란 기본적으로 '대동법'을 기본으로 한다. 대동법이란 조세를 가호를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농지 면적 단위로 바꾸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내면서 부과 단위로 바꾸며 쌀로 통일해서 내자는 것이 대동법의 뼈대다. 과거 대동법을 주장한 정치가들이 바로 조광조, 이이, 류성룡, 김육 등 이른바 개혁정치가들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전쟁이 끝난 후 전쟁을 전두 지휘한 류성룡은 포상은커녕 파직당하고 각종 입법은 폐기되었다.  

 

그 이후는 어떤가?

유성룡의 파직 이후.

숙종 때 개혁파였던 윤휴가 양반 사대부에게도 예외 없이 군포를 납부받자는 '호포제'를 주장한 것은 유승룡의 개혁정책을 계승한 것이다.

 

숙종 6년, 정권이 남인에서 서인으로 넘어가자마자 윤후는 사형당했으며 이후 영조가 이 문제에 손을 댔지만 양반 사대부의 반발로 백성들의 군포를 2 필에서 1 필로 감해주는 '균역법'을 실시하는데 그쳤다.  

결국 조선말, 흥선대원군이 고종 8년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는 호포법을 단행했다.  

 

서원의 철폐와 호포법 실시는 흥선대원군의 실각의 중요한 원인이었을까? 

 

물론 흥선대원군의 치적으론 위의 두가지도 있었지만 경복궁 중건사업을 위한 원납전과 대외정책의 실패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그 모든것을 떠나 자신의 기득권을 챙기기에 바쁜 양반 사대부들이 지배층으로 있는 한 그 나라가 망하지 않을 도리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시의 국방인식과 대응전략에 대한 재검토라는 민덕기 교수의 논문에서는 징비록적 역사관이 과연 옳은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세 번째 당시의 국방인식과 대응전략에 대한 재검토 라는 민덕기 교수의 논문에서는 징비록적 역사관이 과연 옳은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문을 열고 잠을 자다 도둑을 맞았을 때 문을 열어놓고 잔 사람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근원적인 잘못은 도독에게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이말에 선뜻 동의되진 않는다.

 

이제 마지막 질문을 할 차례다.

 

일반화의 문제는 내가 지적한 역사의 교훈이라는 문제와 밀접되어 있다. 일반화의 진정한 핵심은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역사로부터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는 것. 즉 어떤 일련의 사건들에서 이끌어낸 교훈을 다른 일련의 사건들에 적용하고 한다는 것에 있다. 역사가들은 19세기 서구 국가들에 의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화를 용서하면서 그 근거로 그것이 세계경제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그것이 그 두 대륙의 후진국민들에게 가져다준 장기적인 결과를 들먹이고 있다. 결국 근대 인도는 영국의 지배가 낳은 자식이라는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p 116.

 

한국 근대화의 초석도 일본의 식민지배로 조선이 근대화가 되었다는 등식도 성립할까?

더불어 해방이후 한국의 경제발전도 일본의 식민지배가 있었기 때문에 근대화가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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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gkim's
작성일
2023. 3. 13.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