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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라면을 끓이며 | 김훈 저 | 문학동네

김훈 라면을 끓이며

2018년6월 밴드 독서모임에서 누군가가 소개한 책이였다. 그의 서평 중에 "밥벌이의 지겨움" 를 소개한 짥막한 글이 이 책으로 날 안내했다. 그리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책 표지소개에.

울진의 아침바다에서 나는 살아온 날들의 기억으로 가득찬 내 마음의 쓰레기들이 부끄러웠다.파도와 빛이 스스로 부서져서 끝없이 새롭듯이 내 마음에서 삶의 기억과 흔적들을 지워버리고 새롭게 다가오는 제2라운드를 위해 정진할 수 있을지 나는 울진의 아침바다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아. 나는 한평생 단 한 번도 똥을 누지 못한째, 그 많은 똥들을 내 마음에 쌓아놓아서 이미 바위처름 굳어졌다.울진 바다에 비춰보니 내 마음의 병명은 종신변비였다. 바다가 나의 병명을 가르쳐 주었다.나에게 가장 시급한 처방은 평생의 똥을 빼내고 새로워 지는 것이리라.

울진 바다에서 나는 바다의 불가해한 낮설움에 압도되어서 늘 지쳐 있었다. 수평선 너머로부터, 내가 기다리는 새로운 생각들은 날아오지 않고,내가 바다 쪽을 바라보는 시간은 길어졌다.나는 조금씩 일했고 많이 해매었다.나의 일을 비지니스를 하는 것인데 일보다 해매기가 더욱 힘들었다.

 

 

바다에 나갔던 새들이 숲으로 돌아갔고
나는 다시 내 서재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정리되지 못한 책들
펼쳐져 있었다.

 

라면을 끓이며

계통이 없는 수많은 메뉴를 유리창에 써붙인 집은 잘하는 집이 아니다. 음식을 잘하는 집은 자신 있는 메뉴 두어개로 중심을 잡고 거기에 딸린 반찬들을 준비한다. 삼겹살을 구워 상추에 싸고 거기에 쌈된장 찍은 마느을 얹어서 아래턱이 빠지도록 입을 벌리고 욱여넣는 식사법은 한국이 발명한 종합적인 ‘한 입’이다. 생선회도 이렇게 먹는데 여기에는 깻잎이 추가된다.이 한 잎은 한 방에 먹여준다. 한국인이 패키지 관광을 선호하듯 먹는것도 한 방으로 끝내는 걸 좋아한다.

 

무더운 여름날


몸과 마음이 지쳐서 흐느적거릴때, 밥을 물에 말고 밥숟가락 위에 통통한 새우젓을 한 마리씩 엊어서 점심을 먹으면 뱃속이 편안해지고 질퍽거리든 마음이 보송보송해진다. 잘 익어서 사각거리는 오이지 하나가 더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마음이 개운해진다는 것은 느끼하고 비리고 들쩍지근한 것들을 생리적으로 내친다는 뜻이다.

 

라면이 나온것은 1963년도의 일이다.


물론 라면이라는 것은 60종의 첨가물이 혼합된 대량제조된 공업음식이다.
노랗고 자잘한 기름기로 덮인 국물에 곱슬곱슬한 면발이 담겨 있는데 그 가운데 계란 까지 더해지면 영양과 품위를 보증한다.그 한그릇이 없던 식욕도 불러일으켜 사람을 먹게 한다. 나는 라면을 먹을때 내가 가진 그릇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비싼 그릇에 담아서 깨끗하고 날씬한 일회용 나무젓가락으로 먹는다. 그렇게 아주 공손하게 라면을 먹기 시작하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난 음식을 먹고 있는 듯하다.

사실 입맛은 빈부 차이와 관계없다는 말은 사람을 조롱하는 거짖말이다. 누군들 깨끗하고 신선한 음식,갓 잡아온 것과 갓 뽑아온 것들, 산과 바다와 흙의 기운을 지닌 풋풋한 것들을 먹고 싶지 않겠는가?

된장찌게 국물은 된장과 여러 건더기들의 삼투와 종합으로서 이루어진다. 국물에 깊이가 드리워진다.그 깊이는 인간을 위안하는 힘이 있다.미역국의 위안은 섬세하고 된장찌게의 위안은 깊다.이 깊이와 섬세함은 스밈과 우러남에서 온다. 어머니의 손맛은 바로 그곳에 접점이 있다.

광야를 달리는 말.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4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새가 알을 품듯 나는 그 생각을 품고 있다.

조국이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그리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다.으스르지게 부둥켜안아보고 싶고 그 품에 안기고 싶은 조국이지만 우리에게 몸부림만 치게하고 강자앞에선 찍소리도 못하는 조국에 한 없이 슬퍼진다.

가난은 그 끝과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가난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 처름 누구를 나무랄 수도 없었고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다.

라면조리법

끊는 물에 면과 분말수프를 넣고나서 4분30초를 더 끓이라고 적혀있지만 나는 센블로 3분이내에 끓여낸다. 가정에서 쓰는 도시가스 는 어렵고 야외용 휘발유 버너의 불꽃을 최대한 이용해 탱탱한 라면발을 유지한다.

 

물은 550ml(3컵) 정도를 끓이라고 포장지에 적혀있지만 나는 700ml(4컵)정도를 끓인다. 수영장도 넓어야 헤엄치기 편하듯 라면도 물이 넉넉해야 편안하게 끓는다. 이는 라면이 끓을때 면발이 엉키지 않아야 하는데 물이 넉넉하고 화산 터지듯 펄펄 끓어야 면발이 깊다.

라면을 끓일때 가장 중요한 점은 국물과 면의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이게 쉽지않다. 라면 국물은 반 이상 남기게 되어있고 그 국물이 면에 스며들어 맛을 결정한다. 국물의 맛은 면에 스며들어야하며 밀가루 맛은 국물속으로 베어나이조 않아야 한다. 이것이 고난도 기술이다. 센불을 쓰면 대체로 실패하지 않는다. 식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분말수프를 3분의 2만 넣는다.

 

나는 라면을 조리할때 대파를 기본으로 삼고, 분말스프를 보조로 삼는다.대파는 검지손가락 만한 10개를 하얀 밑동만 잘라 세로로 쪼개놓았다가 라면이 끊는 2분쯤 끓었을때 넣는다. 처음부터 대파를 넣고 끓이면 파가 끓고 풀어져서 먹을 수가 없다. 파는 라면 국물에 천연의 단맛과 청량감을 불어넣어주고 그 맛을 면에 스미게 한다. 파가 우러난 국물은 달고도 쌉쌀하다. 파는 라면 맛의 공업적 질감을 순화시킨다.

그 다음 달걀을 넣는다.달갈은 미리 깨서 흰자와 노른자를 섞여 놓아야 한다.불을 끄고 끓기가 잦아들고 난 뒤에 달걀을 넣어야 한다.라면이 끓을때 달걀을 넣으면 달국물과 섞이지 않고 겉돈다.


달걀을 넣은 다음에 젓가락으로 저으면 달걀이 반쯤 익은 상태에서 국물 속으로 스민다. 이 동작을 신속히 끝내고 뚜껑을 닫아 30초쯤 기다렸다가 먹는다.

밥1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배터리가 다 떨어지면 핸드폰을 꼬르륵 소리르 내면서 죽는다. 핸드폰이 죽는건 가볍고 하찮지만 나는 이 세계와 단절된다. 그 만큼 내가 세상과 단절되는건 너무 쉬운일이다.

밥의 질감은 운명과도 같은 정서를 형성한다.


전기밥솥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였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울타리 안으로 불러모으고 사람들을 그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애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여야 한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남태평양

작가에게 여행은 여행지에서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다. 계절에 실려서 순환하는 풍경들,노동과 휴식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 지나가는 것들의 지나가는 꼴들,그 느낌과 냄새와 질감을 내 마음속에 저장하는 것이 작가가 여행하는 목적이다.
허나 우리의 여행은 작가의 시선따윈 잊어버리자. 오로지 스스로 있는 그대로 보고 즐기자. 사육되지 말고 혼연히 스스로 사고하고 느껴라.

목슴1

행복에 대한 추억은 별거없다. 다만 나날들이 무사하기를 빈다.
“무사한 날들이 쌓여서 행복이 되든지 불행이 되든지, 그저 하루하루가 별 탈 없기를 바란다.순하게 세월이 흘러서 세월이 끝나기를 바란다.

나의 딸도 나처름 힘들게, 오직 노동의 대가로서만 밥을 먹고 살아가게 될것이다. 진부하게,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은 없다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나의 이 무시무시한 하루의 순환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내 모든 행복으로 삼기로 했다.

돈1

아들아.사내의 싦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사내의 삶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한 것이다.
어려운 말 않겠다.쉬운말을 비틀어서 어렵게 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걸로 밥을 다 먹는 자들도 있는데, 그 또한 밥에 관한 일인지라 하는 수 없다. 다만 연민스러울 뿐이다.

 

사내의 한 생애가 무엇이냐?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알겠느냐?
이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놓은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돈 없어도 혼자서 고상하게 잘난 척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아마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아라.
추악하고 안쓰럽고 남세스럽다.


노동의 고난으로 돈을 버는 사람만이 돈을 사랑할 수 있다. 돈은 지엄한 것이다. 돈이 있어야 밥을 벌 수 있다.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것을 알면 사내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다. 그러니 돈을 벌어라.
나 한테 달라는 말이 아니다. 네가 다 써라. 난 나대로 벌겠다.

나의 자식들도 나처름 힘들게, 오직 노동의 대가로서만 밥을 먹고 살아가게 될것이다. 진부하게,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은 없다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나의 이 무시무시한 하루의 순환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내 모든 행복으로 삼기로 했다.

서민.

이 사회에서 가난이란 단순한 물질적 결핍이 아니다.이 사회에서 가난이란 차별이며 모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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