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문장론
- 출판사 : 지훈출판사
- 발행일 : 2005년
- 읽기 : 2018년7월1일
1장 사색 - 깊이 생각하기.
- 사색과 습득을 통해 얻은 지식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이다.
스스로 사색하는 정신은 인생의 나침반과 같다.
사색은 주관적인 깨달음이다. 아무리 그 수가 많더라도 정리해 놓지 않으면 장서의 효용가치는 기대할 수 없다. 반대로 그 수가 적더라도 완벽하게 정리해 놓은 장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많은 지식을 섭렵해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면 그 가치는 불분명해지고,양적으로 부족해도 자신의 주관적인 이성을 통해 여러 번 고찰한 결과라면 매우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될 수있다. 습득을 통해 얻어진 진리,여러과정을 통해 얻어진 지식.사상은 주관적인 논리와 스스로 터득한 지식을 기초로 세워지는 건축물이다.
독서와 학습은 객관적인 앎이다. 그리고 독서와 학습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색은 주관적인 깨달음이다. 누구나 책을 읽고 누구나 공부할 수 있지만 누구나 이를 통해 사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자란 타인이 남긴 책을 모조리 읽어버리는 소비자이며, 사상가란 인류를 계몽하고 새로운 진보를 확신하는 생산자라고 표현할 수있다.
스스로 발견한 사상을 통해 개별적인 진리는 고유한 생명을 획득한다. 우리가 참된 의미에서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사상뿐이다.
나만의 고유한 사색에 의해 어떤 진리에 도달했다면, 비록 그 내용이 앞서 다른 책에 기재되었을지라도 타인의 사상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체험이라는 것이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고유한 사색을 통해 얻어진 진리이기 때문에 독서를 통해 우연히 획득한 진리와 달리 어떤 환경변화가 발생해도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리를 획득하는 이 같은 과정은 “괴테” 가 남긴 다음과 같은 격언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대 조상이 남긴 유물을
그대 스스로 힘으로 획득하라.
즉 스스로 사색하는 자는 자신의 의견을 먼저 정립한 후 비로소 이를 보증하고자 권위있는 학설을 습득하여 그 의견을 보충한다. 반면 “서적 철학자”는 타인의 권위에서 출발후 이들의 학설을 긇어모아 하나의 체계를 정리한다. 그러므로 타인으로부터 얻은 재료로 만들어진 철학이 인형이라면 자신의 사색으로 만든 철학은 살아 있는 인간인 것이다.
스스로 사색하는 정신은 영원히
독서는 사색의 대용품으로 정신에 재료를 공급해줄 수는 있어도 우리를 대신해서 저자가 사색해 줄 수는 업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다독을 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대용품, 즉 독서가 실제적인 사색을 방해할 수도 있다.
독자적 사고와 독서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우선 독서는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독서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이 강하게 흘러들어온다. 또한 사고의 체계가 책을 통해 자신의 사상쳬계와 결합시킴으로서 다른 사람을 통해 읽고 들은 내용을 통해 자신의 체계를 잡아간다면 독자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반대의 경우이다.그러므로 자신의 사고의 샘이 막혀 버렸을 때만 독서를 해야 한다.독자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사물에 대해 자신이 직접 파악한 것을 말한다.
2장. 글쓰기와 문체. - 자신의 사색을 녹여서 쓰기.
- 간결한 문체와 적확한 표현은 좋은 글쓰기의 첫걸음이다.
- 문체는 정신의 관상이다. 정신의 관상은 신체가 주는 인상 이상으로 진실하다.
저술가에겐 두 가지 타입이 있다. 사물의 본질을 밝혀내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과,무언가를 쓰기 위해 사물을 관찰하는 사람이다. 첫 번째 타입의 저술가는 고유의 사상과 경험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이를 독자에게 전달하는데 글쓰기의 가치를 둔다.
두 번째 타입의 저술가는 돈을 목적으로 즉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쓴다. 따라서 그들은 무언가를 쓰기 위해 사고한다. 이들 저술가들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사실이 진위가 불분명하거나 왜곡된 것은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의 허구성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항상 형태가 모호한 사상을 즐겨 애용한다.따라서 그들의 문장은 명확함과 명료함이 결여되어 있다. 우리는 이같은 특징을 통해 그들이 단지 원고지의 빈 여백을 메우기 위해 붓을 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간은 너무나 소중한 조건이다.그러므로 저자가 단순히 원고지를 매우기 위해 집필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저자에게 기만당한 것과 마찬가지다.대다수의 저자들은 독자에게 무언가 전달해야 할 지식이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그 명분이 실은 저자의 변명에 불과했다면 우리는 그들의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기만당한 셈이다.저급한 저술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원천은 신간만을 찾는 어리석은 민중에게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직업은 저술가가 아니라 일당제 저널리스트이다.
욕망의 패러독스.
신간에 대한 작가의 저주다.신간의 저자들 중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더물다. 게다가 자신의 부족한 지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선구자들의 위해한 사상을 멋대로 뜯어고치고,자신의 방법대로 재구성하고,영원히 통용될 진리를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삭재해 버린다. 그뿐만이 아니다.위대한 선구자들이 발견한 의견이나 주장이 마치 자신의 새로운 발언인 것처르 왜곡시킨다. 그에게는 지나간 과거의 가치를 깨달을 만한 능력도 없고 선구자가 남긴 사상의 발자취를 따라갈 용기도 없다.그의 눈에는 표면적으로 이해되는 천박한 진리외엔 아무것도 뵈지 않는다.그들이 기존의 진리에 도전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존재를 세상 사람들에게 입증하고 싶어서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 한 가지 소망 때문이다.
문체의 독자성.
글쓴이가 어떤식으로 사색을 했는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혹은 “어떤 식으로”, 는 작가의 사고체계에 갖춰진 고유한 “성질”이며 이 성질을 지배하는 개념은 “독자성”이다. 그리고 작가의 사색에 내포된 고유한 성질을 비추는 거울이 바로 문체이다. 다시말해 우리는 작가의 문체를 통해 그의 사상을 결정짓는 “형식적인 특징” 즉 정신의 고유한 형태를 파악하게 된다.
누구가 쉽게 이해하는 글 쓰기
소박한 기풍과 정직한 글쓰기야말로 작가에 대한 완벽한 찬사다.
소박하다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의미이며,정직하다는 것은 진리라는 뜻이다. 소박하고 단순한 문체는 독자를 정신의 세계로 유혹하지만 부자연스럽게 덧칠된 문장은 읽는 이로 하여금 심란함을 느끼게 만든다.
따라서 졸렬한 문장이 탄생하는 원인은 문체가 졸렬해서가 아니라 작가의 사상이 졸렬하기 때문이다. 읽기 쉽고 정확하게 이해되는 문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주장하고 싶은 사상을 “소유” 해야 한다.
문체.
표현이 모호하고 불명확한 문장은 그만큼 정신적으로 빈곤하다는 반증이다.이처름 표현이 모호해지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이 사상적으로 불명료하기 때문이며,작가의 사상이 불명료하다는 것은 사색의 오류,모순,부정에서 시작된다. 어떤 사람의 머릿속에 하나의 사상이 떠오르면,그는 즉시 머릿속에 떠오른 사상을 명료화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이 같은 노력의 결과가 바로 문체이다. 따라서 인간의 지성으로 고찰할 수 있는 모든 사상은 언제 어느 때나 명료하고 평범한 언어를 통해 표현될 수 있다.다시 말해 문장이 난해하고 불분명하며 모호하다는 것은 그 문장을 조립한 작가 자신이 현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응석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사실을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숨기려 한다.
간결한 표현과 사족.
쓸데없이 덧붙인 단어도 문체의 이 같은 목적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볼테르 또한 “형용사는 명사의 적이다” 라고 말했다. 독자가 읽는 내내 권태를 느끼게 되는 비결은 모든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의 핵심과 중요한 부분만 언급하고 독자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는 남겨둬야 한다.
진리는 간결하게 표현될수록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전달한다. 그 이유는 첫째,독자의 마음을 분산시키는 원인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독자가 수사적 기교에 농락당하거나 기만당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3장 독서.
생각하는 독서.
독서는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떠넘기는 행위이다. 독서를 하는 동안 스스로 사색하는 작업을 중지하고 독서로 정신의 자리를 옮길 때 우리의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은 이 같은 고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많은 독서로 시간을 보내는 근면한 사람일수록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게 된다. 항상 탈 것에 의존하면 마침내 걸어다니는 힘을 잃어버리는 현상과 비슷하다.
독서노트.
올바르게 읽는 책은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독서의 진정한 가치는 읽고 생각하는데 있다.
독서를 위한 독서는 생각하는 힘을 잃게 한다.
진정한 독서의 가치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독서는 우리가 구사할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을 촉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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