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의 '모순'을 읽고
소득 수준이 어떻든 상관없이 삶에서 발생하는 불운에 우뚝 설 수 있는 힘은 잔고뿐이다.
돈의 심리학/ 모건하우절.

우리 삶을 밀도있게 만들어주는 건 무엇일까.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지난 시절.
문학보다는, 경제적 성공에만 집착했던 시절.
문학의 입문은 다소 늦은감이 없지 않지만,
문학을 통해 내 삶의 밀도는 조금씩 농밀해져 가는 것 같다.
인문학을 체득하는 데에는 흔히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한다.
먼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수용의 단계 그리고 그 문법적 수용위에 내 것으로 소화해 내는 사유의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유를 표현하는 레토릭단계다. 서사와 자신만의 사유로서 어떤 주제든 품고 있는 목소리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수 있는 짙은감정과 선명한 지성, 놀라운 솔직함이 그의 삶속에서 흘러나올 것이다.
이제는 타인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할줄 아는 나이가 된것같다.
여기 굉장히 유명한 인플루언스가 있다.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그런데 그녀가 일찍 안정적인 가정을 누리게 된건 일찍 안정적인 남자와 결혼을 한 덕분이었다. 그런 그녀가 사실은 결혼 후 줄곧 남편에게는 사랑을 못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남편이 너무 못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귀.
그녀는 그것이 너무 싫었다. 그러던 어느날 무도회에서 너무나 잘 생긴 차은우 같은 남자와 눈이 맞아 바람이 나버렸다. 그러나 그 남자 역시 숨겨둔 약혼녀가 있었다. 그 남자의 그 순진한 약혼녀는 잘생긴 자신의 남자에게 버림받고 큰 상처를 받았다. 남의 여자에 피눈물 나게 만든 그 화려한 인플루언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은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되고, 인풀루언스의 남편은 그녀에게 끝까지 이혼을 해주지 않게 된다.
시간은 흐르고 자신에게 아들이 있어 쉽게 가정을 버리고 도망가지도 못했다.
이 스켄들이 알려지고 사회적으로도 욕을 먹고 그 잘생긴 남자는 사랑의 장난에 점점 시큰둥해지게 된다.
그 인풀루언스는 자신의 남편과 바람난 잘생긴 남자와의 관계에서도 모두 실패하고 만다.
그러던 중 기차역에서 스스로 목슴을 던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톨스토이이고 인풀루언스의 주인공은 안나 카레리나였다.
모든 문학작품에는 상황과 이야기가 있다. 상황이란 맥락이나 주변환경, 플롯을 의미하며 이야기란 작가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는 감정적 경험 혹은 통찰과 지혜 그리고 작가가 전하고픈 말이다.
전체 플롯은 간단해 보이지만 그들 사이의 감정의 흐름과 대화의 기법 속에 몰입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소설을 읽으며 감정이 동화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소설이란 독자들의 다양한 해석에 맞추어 소설속에서 자신의 폭을 넗히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 인간이란 이름의 일란성쌍둥이가 아니겠나.
생김새와 성격은 다르지만 한번만 뒤집으면 얼마든지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일수 있는 우리.
얼마 전 읽은 양귀자의 모순과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은 장편과 단편의 차이를 알게 해 준 귀중한
시간이었다.
모순의 줄거리.
주인공 안진진(25세) 은 자신의 삶이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을 깨닫고, 이제부터는 전 생애를 걸고 자신의 인생을 탐구하며 살기로 다짐한다. 주인공의 이러한 탐구의 중심에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쌍의 삶과 두 남자와의 관계가 있었다. 바로 극과 극을 살아가는 모순적인 엄마와 이모. 엄마와 이모는 일란성쌍둥이다. 같은 날 태어나 같은 날 결혼까지 한.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은 너무나 상반되게 흘러간다. 나의 어머니는 술주정뱅이이자 도박꾼인 아버지로 인해 궁핍하고 고통받지만, 끊임없이 닥치는 고난을 해치우려 할 때 오히려 활력을 얻는 강인한 엄마다. 동생(진모)의 살인미수 사건에도 좌절하지 않고 생명력 넘치게 삶을 꾸려간다. 반면 이모는 정해진 계획대로 사는 건축가 이모부 덕분에 부유하고 안락하지만, 그 단조로움과 권태를 이기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삶을 살아간다.
한편 진진이 사랑한 두 명의 남자. 안진진 앞에 놓인 두 남자는 아빠와 이모부의 삶을 데칼코마니처럼 투영한다.
김장우 (아빠와 유사)는 낭만적이고 우수에 젖어 있으며, 즉흥적이고 궁핍하다. 진진은 그에게 '죽어버리더라도 끝까지 달려가게 하는 장렬한' 사랑을 느끼지만, 동시에 아버지의 주폭 대사를 재현하며 사랑이 자신을 가둘까 두려워하는 모순에 직면한다. 반면 나영규는(이모부와 유사) 치밀하게 계획적이고 안정적이며 결점이 없지만, 그 완벽함이 몽상이 낄 틈 없는 답답함으로 느낀다.
두 남자 중 누구를 선택했을까는 남겨둔다. 읽는 독자의 몫이다.
이 책을 인생소설이라고 생각하게 된 건.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맹세.
어느 날 아침 문득, 정말이지 맹세코 아무런 계시나 암시도 없었는데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내 인생을 위해 내 생애를 바치겠다고. 그런 스스로를 향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사이 더욱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눈물이, 기척도 없이 방울방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_9 page
나는 가난했다. 더불어 부모의 부를 대물림받지 못한 불운한 이들은 어느 세대에 속하든 사회 밑바닥에서 평생 힘겨운 삶을 살아갈 각오를 해야 했다. 그러니 공부보단 차라리 몸을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건 주인공 안진진의 동생 안지모랑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나 역시도 어느 날 문득 사회로 진출 후 초라한 나의 모습이 빈약한 지갑처럼 느꼈을 때 내가 얼마나 못난 사람이고 이렇게 살아서는, 이 지긋지긋한 가난의 형벌을 모면할 수 없다고 얼마나 길바닥에서 많이 울었던가.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왜 이렇게 가난하게 태어나 사람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드는지 부모님을 원망하고 원망했었다.
이렇게 살 수 없다고. 그런 나의 모습 외침 속에 안진진의 대사가 투영된다. 그 시절 나의 맹세가 불현듯 떠 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할 줄 알았으며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 누구의 탓으로도 돌리지 않는.
학창 시절 가출은 일진과 이진의 경계선에 있는 하나의 일탈행위였다. 주인공 안진진은 세 번이나 가출을 한 아주 명랑한 소녀였다.
어릴 적 에피소드란 맹랑한 것이 아니라 명랑한 것임을. 이 말을 이해하는 이가 많이 있을까? 정해진 길로만 가지 않았던 우리의 행위는 명랑한 것이라는 것. 마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삶을 반드시 도덕적으로만 살아야 하는가?
타인의 불행.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상처는 상처로밖에 위로할 수 없다. 당신이 겪고 있는 아픔은 그것인가. 자 여기 나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어쩌면 내 것이 당신 것보다 더 큰 아픔일지도 모르겠다. 내 불행에 비하면 당신은 그나마 얼마나 천만다행한 일이 아닌가.
20,30대까지 나는 나와 비슷한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을 은근히 좋아했다. 내 고통을 알아줄 나의 불행을 알아줄 그 누군가를 만나면 그의 불행과 나의 불행을 대조해 보았다. 누가 더 불행한지. 그런데 결국. 그의 이야기를 듣는 척하는 것일 뿐 내 불행에 대한 이야기만 할 뿐이다. 이것이 나의 한계였다. 그런데 그런 불행을 가진 사람들은 결국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위대한 유산
삶을 도덕책 순서로만 살아온 착한 이종사촌 안주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 또한 사뭇 흥미로웠다. 그녀는 이모부의 삶을 이렇게 평가했다.
무능한 아버지. 가족에게 몹쓸 짓 만한 아버지. 최소한의 경제적 욕구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아버지를
왜 인정하는지 , 왜 버리지 못하는지 주리는 호소 하지만 주인공 안진진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 살아가는 동안 수 없이 우리들 머릿속을 오고 가는 생각. 그것을 제외하고 나면 무엇으로 살았다는 증거를 삼을 수 있을까. 우리들 삶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것이 아버지가 가르쳐준 중요한 진리였어. 아버지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너무 많이 생각했다는 것이야. 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이 한평생 살고도 못 가르쳐준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어. 이미 우리 아버지는 자식한테 해줘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봐. 아버지는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셨어. 난 아버지를 사랑해.
그 원망의 배경에는 경제적 무능 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잘못한 것은 없다. 어쩌면 세상을 너무 몰랐다. 그냥 열심히 사신 것뿐. 경제적 무능 빼곤 죄가 없었다. 이모의 딸인 주리. 그녀는 늘 잘 갖춰진 새장 속에서 자라왔다. 어려움 없이. 그래서 답답하고 재미없는 인간으로 성장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세상의 숨겨진 진실들을 배울 기회와 시간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평생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일 수 있다는 작가의 말에 난 긴 호흡을 했다. 어쩌면 나의 환경 덕분에 일찍 세상을 알게 되었다. 탐욕과 아부의 세계. 잘난 이들을 대처하는 법과 세상을 사는 법을 남들보다 좀 더 일찍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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