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를 읽고
2024년 5월 이번달 독서모임 책은 한강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였다. 매년 오월이 되면 다시 찾아오는 광주항쟁을 다룬 '소년이 온다' 에 이어 매년 사월이 되면 4.3사건을 다룬 책이었다.
결론
소설이란 무엇인가?
먼저 가장 근원적인 요건인 '구수한 이야기'의 재미적 요소다. 그리고 읽을 때의 경쾌한 속도감에 매료되어 기분 좋게 빨려드는 이야기의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 좋다.
우리가 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상대방이 재미있게 들어줄 때 묘한 매력이 발산되는 것처럼 소설은 독자를 작품 속으로 깊이 있게 빨아들이는 것이 필수요건이다. 그것이 '합의된 사기' 이든 '썰을 잘 푼 소설' 이든 '사실주의적 리얼리즘' 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명랑한 재미와는 굉장히 먼 주제이며 , 엄숙주의가 요구되는 '애도'에 관한 소설이였기에 불편한 책이였다. '금지된 것에의 도전' 이 곧 문학의 본질이라면 '애도' 에 대한 작가의 노력과 도전은 굉장한 찬사를 받을만할 것이다. 그전에도 제주 4.3 사건을 다룬 책들이 있다고 선생님께서 말을 했지만 읽어보지 않았으니 모를 일이다.
다만 수업시간 중 선생님의 말처럼 주제에 대해 감각적으로 미학적으로 풀어내며 수채화를 채색하듯이 담담한 어조로 죽은 이의 영혼과 작별을 할 수 없으니 '작별할 수 없다',라고 말한 작가의 '애도에 대한 시선'은 흥미를 넘어 엄숙하다.
역사는 반복 되는가?
4.3 제주사건을 넘어 세월호와 이태원의 참사를 보며 난 무슨 생각을 하고 타인에게 무엇을 말하였던가.
시대의 어른이자 지식인으로서 행동하는 양심을 보이며 살아왔는가? 그저 말만 앞세우지 않았는가?
나의 위선적 도덕과의 관계. 이중적 현실과의 관계에 대해 구역질이 났다. 사회에 대한 분노를 머금은 채 위선적 현실에 기생해 살아가는 나의 이중적 태도가 언제쯤 바뀔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오래 머물렀다.
마스트 플롯
작가가 5.18을 모티브로 한 소년이 온다 이후 다시 한번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쓴 두 번째 소설인 작별하지 않는다는 전작과 다르게 모호함이 선명하다. 5.18은 잔혹한 역사이자 저항의 과정이라 숭고함이 느껴진다면 제주 4.3 항쟁은 일반적인 학살이었기에 숭고함 대신 마음만 찢어지게 아픈 역사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남로당 사람에게 밥을 줬다는 이유로, 빨갱이의 가족이란 이유로. 집안남성이 부재중이란 이유로 숨겨줬다는 것으로 본보기로 살해하는, 말도 안 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총살시킨 아픈 역사의 사실을 작가가 경하로 대비시켜 친구의 입을 통해 사건을 소설로 풀어낸 이야기다.
책의 줄거리
주인공인 경하와 인선 그리고 인선의 엄마
경하와 인선은 대학 졸업 후 잡지사에서 편집기자와 사진작가로 만나 친구가 되었다.이후 경하는 작가가 되었고 인선은 짧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이 되었다.
어느 날 경하는 탈고 이후 슬럼프를 겪으며 자살을 생각하던 소설가 경하가 오랜 친구이자 사진가이며 목수이기도 한 인선의 전화를 받고, 손가락이 절단된 그녀의 부탁대로 그녀 집의 앵무새에게 물을 주러 갔다가 앵무새가 죽은 체로 발견된다. 하나 사실 앵무새는 살아있었고 다음날 상처를 치료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인선에게 자신의 아버지 엄마가 겪은 제주 4.3 사건의 생존자로서 기록들을 듣게 된다.
빨갱이를 소탕하겠다고 제주 민간인 1/10인 3만 명을 학살한 사건.
인선의 어머니는 그 사간이 일어나던 날 언니와 함께 당숙네에 있었기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소식을 듣고 돌아와서 한 일은 벌판에 학살당한 사람들 중 가족을 찾는 일이었고 시신이 되어 차가워진 어머니와 아버지를 찾았다. 막내 여동생은 총상을 입고 기어와 마당에 쓰러져있었다. 다행히 발이 빠른 오빠는 도망친 듯싶었으나 이후 끌려갔던 곳에서 몇 번의 만남 이후 다른 곳으로 이송된 후 소식이 끊겼고 시신도 찾지 못했다. 인선의 아버지 역시 그 사건당시 19살 장남이었고 12살부터 젖먹이 동생과 남동생이 있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너무 어려 집에 머물렸고 무장대와 내통할 나이가 된 인선의 아버지의 부모님은 인선의 아버지만 동굴에 대피시켜 놓았다. 잠깐씩 집에 들러 부모님과 소통을 이어오던 인선의 아버지는 어느 날 다시 집을 방문했을 때 집은 불탔고 아버지는 죽어있었다. 집집마다 인원을 대조해서 없는 사람은 숨김 다고 판단하여 인선의 아버지의 부모님을 본보기로 처형한 것이다. 이후 그는 붙잡혀 15년형을 살고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형무수로 끌려간 오빠를 찾는 정심(인선의 어머니)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마흔 둥이로 인선을 낳는다. 4년 동안 치매에 걸린 엄마를 간호하며 살면서 그날의 사건이 얼마나 엄마를 힘들게 하였는지 알게된다.
결말은 모호하고 애매하다. 인선이 병원에서 죽고 혼으로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경하가 인선의 집에 온 첫날 추위에 죽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경하가 인선의 환상을 본 것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다. 그러나 결말은 환상인지 죽음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저 그날 제주의 사건을 경하와 인선의 대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어 한 작가의 의도가 더 와닿는다. 환상이든 죽임이든.
책꼽문
어떤 기쁨과 상대의 호의에도 마음을 놓지 않으며 다음 순간 끔찍한 불운이 닥친다 하여도 감당할 각오가 몸에 뵌듯한 오랜 고통에 단련된 사람들이 특유하게 갖는 침통한 침착성으로._p 99
개인적으론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 문장을 접할때마다 숨이 막히는 건 사람을 바라보는 관찰의 스펙트럼이 이렇게 넓어질수 있구나 하는것을 배우게 된다.
태어나 저런사람을 두어번 만나본듯 하다.
그리고 또하나 느낀것은 얼마 전 읽은 신형철 교수의 《인생의 역사》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서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
(중략)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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