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2를 읽고.
탁월함의 최고는 간결함에 있다.
넓게 배우고 깊이 공부하는 것은
반대로 간략히 설명하기 위해서다.
-맹자, 중국 철학자-
방국석 미술관을 읽고 있다. 나는 예술보단 문자를 사랑하고 그중에 문학보단 비문학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그림이나 음악, 건축등 예술일반에도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관심이 아무리 커 다해도 글과 회화의 위대함이 음악의 위대함에 비할 바가 아니라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음악은 말없는 가운데 인간의 감정과 삶.
그리고 그 너머의 세계까지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것 앞에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사랑이든 신이든 자연이든 선 이든,
우리는 할 말을 잃지 않는가?
흐르는 감동 앞에서 입은 침묵하고.
음악의 위로는 그것이 말로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니 말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참으로 ‘깊다’. 는 생각을 여태껏 해왔다.
그런 생각의 틀을 조금씩 바꿔준것들이 바로 회화의 재발견이다.
수동적인 ‘보기’ 가 아니라 적극적인 ‘관찰’ 관찰은 눈으로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듣는 것’ 과 ‘주의 깊게 듣는 것’의 차이처름. 모든 지식은 관찰에서부터 시작된다면. 하나의 사물을 수동적으로 보지 않고
무엇을 주시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주시해야 하는지를 안다면 관찰은 생각의 한 형태가 될 것이다.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이란.
모든 사물에 깃들여 있는 매우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을 감지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그렇게 회화는 우리에게 다가온다. 서양회화보단 한국회화를 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우리네 정서가 담긴 색들을 표현한 예술들이 있다.
비 갠뒤의 먼 하늘색을 그려낸 고려의 청자.
중국 청자의 비색 秘色 ('비(秘)' 자는 숨길비, 심오할 비 자로 비밀스럽고 소중하다는 의미의 비)와 구분되어 비색 翡色(엷은 청색)으로 쓴그 색. 그 색깔이 주는 아득함이란 쪽빛하늘이 주는 뉘앙스와 비슷한 마음이다.
쪽빛.
소설가 조정래 작가의 말을 빌려보면
"가슴이 짜르르 울리는 전율과 함께 무언가 깊게 사무치는 감정을 일으키는 그 쪽빛을 무어라 해야 할까. 그건 깊고 깊은 바다에서 금방 건져 올린 색깔이었고 차고 시려서 더욱 깊고 푸르른 겨울 하늘을 그대로 오려낸 것이었다."
쪽빛은 바라볼수록 처연하고 한스러운 감정에 사무치게 하는 것이었다. 시인 김지하는 또 이렇게 쪽빛을 표현했다.
"아 그 모시의 쪽빛을 무어라 표현할까. 한바다였고 깊은 가을하늘이었다. 그 빛깔. 그 감촉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나는 한 마디 밖에 모른다. 꿈결!"
쪽빛을 보고 난 시인과 소설가의 느낌이 별나면서도 흥미로운 건 그만큼 우리네 정서에 달라붙어있는 묘한 색깔이어서 그럴 것이다.
조선의 백자는 또 어떠한가.
백자에 대한 감흥은 선이주는 감흥이라 할 수 있다.
김환기의 <항아리>라는 수필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직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 해서 다 같지가 않다. 모두가 흰 빛깔이다. 그 흰 빛깔이 모두가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고요하기만 한 우리 항아리엔 움직임이 있고 속력이 있다. 싸늘한 사기지만 그 살결에는 다사로운 온도가 있다. 실로 조형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과장이 아니라 나로선 미에 대한 개안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한다. 둥근 항아리. 품에 넘치는 희고 둥근 항아리는 아직도 조형의 전위에 서 있지 않을까? _유흥준 / 안목 / 261page.
또 하나 국학자 도남 조윤제 선생의 평을 빌려보면
"은근과 끈기"를 시각적으로 드러낸 '저속의 정서' 다. 조선의 선은 고려의 숟가락으로 시작해 밥상 위의 대접. 책상다리와 서랍고리, 고무신과 버선의 코 덧붙여 살랑거리는 수양버들가지나 떠다니는 구름처럼 조선의 선은 그 맥락을 이어간다. _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 손철주 / 생각의 나무.
그렇게 다가온 한국의 미를 가장 잘 표현해 준 작가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이 책에 나온 한국의 작가들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박수근이나 이중섭은 작품이 놓일 미술사적 위치를 차치하고서라도 드라마틱한 삶의 요소로 인해 미술시장에선 메가톤급 스타가 된 인물들이다. 그들 외에 신선하게 다가온 예술가들이 있으니 그중에서도 먼저 장욱진의 독이라는 회화를 소개해 본다.
거대한 캔버스에 무언가 거대한 것을 그려내야겠다는 욕심은 접자.
애써 잘 그리려 하지 않는 그림.
애써 남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는 그림.
그 보다 화가의 순수한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례 흘러나온 장독.
뒤뜰 안 정갈하고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장독대,
장독대는 마치 뒤뜰 안에 자리잡은 그 집안 가도를 보이는 보임새 같은 것이기도 해서 예전부터 한국의 주부들은 이 장독대를 자랑삼아 왔다.
그 뿐이랴. 정한수 한 그릇 장독대에 바쳐놓고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우르러 남편의 일과 자식의 일들이 잘 되도록 소리없이 어머니들이 빌었던 바로 장독대가 이니던가.
우리의 생명을 이어 줄 어머니의 손 맛이 시작된 곳에서 음식은 자연의 순리에 따려 천천히 익혀 줄 것이다.
미술사학자인 혜곡 최순우 선생은 예술에 대해 이렇게 평하였다.
"예술이란 하루아침의 얄팍한 착상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재치가 예술일 수는 더욱 없는 것이다. 참으로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것만을 생각하고 그것만을 위해서 한눈팔 수 없는 외로운 길을 심신을 불사르듯 살아가는 그 자세야말로 정말 귀한 예술의 터전이 된다."
혜곡의 말씀을 잠시 담아두며 미술작품을 감상 하노라면 그들의 관찰이 어떠했는지 이해의 폭이 조금씩 넓어진다.
거장의 예술세계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단순해진다.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모두 걷어내고 핵심만 추려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한국추상미술의 선구자였던 유영국의 절필작도 바로 그런 특징을 과감히 보여준다.
가장 아래 뜨겁게 제련 중인 적갈색의 산.
바로 우리의 질풍노도의 시기이자 청춘의 시절.
그 위에 순도 높은 철의 냄새가 풍기는 강철 산. 우리의 삼사십 대가 아니던가? 그 위에 용광로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빨간 하늘. 하늘은 우리에게 늘 열정만을 요구했다. 그 하늘 위로 하얀 삼각의 선. 단 하나의 선만이 남아 있다.
그 선은 조용히 위로 또 위로 조용히 상승한다.
"결국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_ 유영국.
세상이 어떻든 이젠 내 갈 길을 가겠다는 결심이 간결하게 전해오는 자화상.
김환기.
2015년에 한국예술연구소가 각 분야 전문가 10인을 대상으로 '20세가 한국을 대표할 예술작품'을 설문 조사한 결과 미술분야에서는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박수근의 빨래터를 제치고 1위에 뽑혔다.
아래의 글은 유흥준 교수의 <안목> 중 김환기의 평론을 인용한 것이다.
김환기 예술에 대한 높은 평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는 서구의 모더니즘을 받아들여 우리 근대미술을 세련시킨 점이고 또 하나는 추상표현주의를 자기화 내지 토착화함으로써 우리 현대미술을 세계미술의 지평에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김환기의 예술세계는 전후 두시기로 구분된다. 1965년 52세에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한국적 서정의 추상적 표현과 이후는 순수조형을 지향하는 절대추상이다. 자연과 인간의 서정을 '노래하던' 시절에서 자연과 인생을 '사고하는' 조형세계로 바뀐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예술철학자 조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러(1759-1805)는 소박의 시와 감상의 시에서 자연을 대하는 시인(예술가)의 태도에는 '자연적으로 느끼는 시인'과 '자연적인 것을 느끼는 시인'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전자는 자연을 소유하지만 후자는 자연을 탐색한다고 규정하였는데 김환기의 예술이 바로 자연을 소유했던 시기와 자연을 탐색했던 시기로 나누어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나도 이젠 지극히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더욱 좋다.
김환기는 또한 조선의 백자달항아리를 한국미의 아이콘으로 부각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절친한 벗인 미술사가 최손우와 함께 ~
그리고 가장 최근에 접한 가슴 따뜻함이 서서히 밀려오는 회화.
송지호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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