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수업

  • EBS 미디어.
  • EBS 100세 쇼크 제작팀 지음

늙어서도 인정 받는 일이 그리 중요한가?

나의 부모님께서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밭에 나가 각종 채소며 야채를 심고 그 수확물을 때마다 자식들에게 보내주시곤 하셨다. 거동은 불편하고 밭일의 노동이 그리 쉬운일은 아닐터인데 육신이 불편해 가면서 까지 밭일을 놓치않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돌이켜보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욕구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생존해야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확신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노년의 삶에서 조금이라도 자식의 삶에 일말의 보탬이 되고자 하는 여망이 어우러져 소소한 수확의 결실과 더불어 삶의 작은 목표까지 만들고 싶었을 터이다. 어디서 읽은 책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인간은 마지막까지 생존할 이유를 찾는 까닭에 살면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인정받은 가치에 의지해 살아가고자 한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부모님은 초고령자로 접어들었다. 살아온 삶에 인정받지 못하고 나아가 더는 가치가 없다고 선고하는 세상에 대해 수면연장의 꿈은 허무할 뿐이다.가끔 철지난 이야기나 과거사를 들춰내어 이야기꽃이라도 피우려할때면 듣고 있는 자식들은 아집이나 욕심처럼 들렸던건 말을 꺼낸 아버지의 잘못일까 듣는 자식의 잘못일까. 그렇게 부모님의 인정욕구는 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발현되었지만 자식들은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뒤쳐진 감각, 들리지 않는 청력, 낡은 감성, 그 모든것을 지적 당하기 싫어하는 것도 그 욕구 때문이리라.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부모님의 노력은 결국 자식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그 욕구의 표현이었다.
밭일도 그러했다.

그나마 젊은 시절에 가장 잘하고 인정받았던 일들이 습관으로 남는 것도 인정받는 일을 할 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하나의 형태일텐데. 나는 여전히 눈치를 채지못하는 사람이었다.

이제 우리가족에서도 일어날 일들.

고령에 계신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전 몇 해 전쯤인것으로 기억된다. 우연히 그 곳에 들러 할머니의 살림살이를 지켜본 일이 있는데 방안은 몹시 지저분 하였다. 생각해보니 방안의 공간이 지저분해 지는걸 감수하고 필요한 물건들이 자기 손에 잘 닿는 곳, 그리고 움직임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곳에 물건을 쌓아둔 것이다. 보기에는 정신없어 보여도 나름의 배치규칙이 있다.
이제 나의 어머니도 나이가 들어가고 멀게는 십년 가깝게는 몇 년내로 외할머니에게 보았던 그 모습이 오버랩되어 보이기 시작한다. 행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식들의 집에와서 사실 일은 없을테지만 당연히 모신다고 하여도 엄마의 성격상 그렇게 하지 않으실 터이다. 자기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곳에서 마지막까지 독립적인 삶을 살고 싶은 욕구. 내 엄마에게도 고스란히 있을 터이다. 허나 나이가 들면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혼자 살아갈수는 없다.
신체적변화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부모님들은 스스로 행복까지는 아니겠지만, 불편하지 않을정도의 안정적인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 정서 조절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건 외롭기 때문이다. 감정을 어디에 표현할 때가 없다보니 참고 인내하는게 더 일반화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떻게 내가 해드려야 할지 나에게 남은 숙제다.

엄마에 대하여.

감정표현도 연습이 필요하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인지 조절 기능이 쇠퇴하는 반면 감정 조절 기능이 향상된다. 인생에서 남은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려면 감정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의도된 감정조절인 셈이다.
우리네 부모님의 나이는 그들이 살아온 사회.문화적 배경은 감정을 표현하기 보다는 참고, 인내하는 게 더 일반적이었다. 자기감정에 집중하거나 적절한 표현법을 학습할 기회가 잘 없기도 했다. 노인의 감정 표현이 수동적이고 경직되어 있는 건 이런 환경적 요인과 더불어 현재 이 사회가 노인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영향을 받은 노인의 심리상태가 반영된 결과다.
한두 가지 역활 상실로부터 감각적.신체적 상실, 은퇴에 따른 사회적 지위 상실등 평생 가치와 의미를 두었던 것들을 살아면서 자연스럽게 잃어간다. 이 과정이 심리적으로 위협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노인의 감정이 한참 무뎌졌거나 거의 소멸된 상태일 거라 짐작한다. 감정도 에너지라서 젊었을 때와 같은 횟수와 강도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슬픔이나 외로움,고통,절망 등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다. 가능한 모든 감정이 노인 마음 안에 산다. 이 감정을 수용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두 번째 수업 – 우리는 모두 100년을 산다.

다시 인식해야 할 나이 듦.

나이와 노화,노인과 노년을 둘러싼 암울하고 부정적인 시선은 그 생애 단계와 시간을 두렵고 피하고 싶은 무엇으로 만든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우리가 겪게 될 노화나 노년에 대해 스스로 긍정할 수없다면 어떻게 그 시간과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

수면연장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불행을 예비하는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지금처름 우리가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에 따라 달라질 시간이 더 연장되는 것뿐이다. 노화가 여러 불편함과 불안함이 느는 현상인건 분명해도 그 의미를 어떻게 인식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100세까지 다른 시간이 펼쳐질 수 있다.
노년의 존엄한 삶을 위해서는 경제적 안정만큼 이러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는다.

먼저 연령을 의미하는 생활나이(chronological age)가 있다.살아온 햇수로 법률이나 행정절차,관습의 기준이 되는 나이다. 생물학적 나이(biological age)는 생물학적 생리적 발달과 성숙 수준,신체적 건강수준을 나타낸다. 흔히 ‘몸 나이’ 라 부른다. 다음으로 경험에 근거한 심리적 성숙과 적응 수준을 나타내는 심리적 나이(psychological age)가 있다. 규범이자 지위가 되는 사회적 나이(social age)는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오로지 자신이 느끼는 주관적 나이(self-awareness age)가 있다. 자각 연령이라고도 하는데, 급작스런 수명연장과 노인 인구 팽창으로 자신의 주관적 나이가 사회적 나이, 또는 생물학적 나이와 불일치하는 경험이 늘고 있다.
2015년 UN의 100세 시대 생애주기별 연령에서는 17세 까지 미성년, 17세에서 65세까지가 청년, 65세에서 79세까지가 중년, 79세에서 99세 까지가 노년 100세 이상은 장수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학자나 단체에 따라 그 시간을 ‘젊은 노년’, ’50+’,’세번째 무대(the third stage)’,’ 세번째 장 (the third chapter)’,’앙코르 커리어(encore career)’등으로 명명하고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노인은 없다.

국민연금법에서는 60세이상을 노인으로 본다. 노인복지법상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한건 1889년 독일 비스마르크가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노령연금 수해 연령을 65세로 정한 걸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당시 독일의 평균수명은 49세 였다.
현재 국내 노동자 평균 퇴직 연령이 52.6세 임을 감안하면 노인 기준 연령 또는 연금 수령연령까지는 기간이 너무 길고 암담해진다.게다가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현재 OECD 국가중 가장 높다.

100세 시대 축복일까 재앙일까.

제2차 베이비붐(1968~1974년생) 세대인 동시에 역사상 최초로 평균수명이 100세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대,말하자면 우리는 100살 까지 삶을 준비해야 하는 첫 번째 세대인 셈이다.

엄밀히 말하면 ‘더 살아야 하니깐 돈 걱정할 일이 늘어난다.’


아이들 교육비만으로도 여유가 없는데 100세 시대 운운하니 여기저기서 ‘노후준비’를 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난리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해도 한참 늦은 거라고 한다. ‘돈이 전부인가?’ 꼭 그렇치만 아닐 것이다.


허나 막연하고 막막한 시대를 향해 가고 있는 오늘 기대수명과 기대여명이 통계청 예측보다 빠르게 증가있는 걸 우리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단 한번도 맞이한 적 없는 시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노인 빈관 상황, 은퇴후 경제지표, 초고령사회로의 초고속이행등 깊은 우려가 묻어나는 상황과 조건임을 감안해도 현실로 다가온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죽은 듯이 조용히’ 사는 게 노년 삶의 미덕인 것처럼, 늙음 자체가 마치 이 사회에 피해를 주는 일인 것처럼, 이런 시각을 재조정하지 않으면 100세 시대는 거대한 문제적 시간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노년을 다루는 학문도 다양해지고 있다. 노인복지학,노인경제학,노인 사회심리학,노인간호학, 등이 많아질 것이다. “노후준비는 60대에는 끝나 있어야 하고,50대에 시작하면 늦고,40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며,30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고,20대 부터 시작한다면 정말 현명한 일입니다.”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은회하게 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그들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2020년까지 150만명에 가까운 은퇴자가 배출될 전망이다. 정부가 뒤늦게 내놓은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실직에 대비한 일자리 대책은 질과는 상관없이 양적으로만 나열한 수준이다.

은퇴준비 체크 리스트.

■ 노후 준비사항 체크 리스트.
① 건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② 은퇴 후 어떤 일을 할 것인가?
③ 삶의 가치에 맞는 사회활동및 봉사활동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④ 은퇴 후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대응할 것인가?
⑤ 생활비(현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⑥ 의료비 부담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⑦ 은퇴 후 어디서 살 것인가?
⑧ 은퇴 후 누구와 어울릴 것인가?
⑨ 은퇴 후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 은퇴 후 생활 체크 리스트.
① 건강한 신체 유지하기.
② 재무 상태 파악하기.
③ 긍정적 정서 유지하기.
④ 노년기에 맞는 삶의 목표 탐색하기.
⑤ 새로운 친구 사귀기.
⑥ 자원봉사활동 하기
⑦ 좋아하는 일로 취미 만들기
⑧ 새로운 지식 교육 받기.
⑨ 욕망과 지출 조절하기.
⑩ 인간관계와 취미 그룹 유지하기.

■ 노후 자금 준비 체크리스트.
① 현재 준비된 노후 자금 규모를 점검해봤다.
② 은퇴 후 필요한 생활비를 계산해봤다.
③ 국민연금 수령액을 확인해 봤다.
④ 직장 퇴직연금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다.
⑤ 개인연금에 가입했다.
⑥ 전체 자산 중 금융자산 비율이 50% 이상이다.
⑦ 실손보험에 가입했다.
⑧ 중병에 대한 진단보험이 준비되어 있다.
⑨ 본인과 배우자의 간병비를 별도로 마련했다.
⑩ 은퇴후에도 매달 들어올 현금 수입원이 있다.

세 번째 수업. – 노후 준비 왜 어려운 걸까?

은퇴후 살아가야할 10만시간의 무게.
특별히 운이 나빳거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은퇴자들 대부분이 갑작스레 길어진 은퇴 후 삶을 위한 대안으로 창업을 고려하지만 그 중 20%만이 유지된다.

롤 모델은 없다.

길어진 생존기간에 대한 라이프 플랜을 수립하고, 생계와 관련된 사항을 잘 고려하며, 시간 활용을 효과적으로 해서 여가 활동의 즐거움도 누릴 줄 아는 유형이 되어야 100세 시대를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남은 인생에 대해서 정확히 인지하고 “얼마나 더 어떻게 더 살아야 될 것인가” 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는 유형이 자신의 행복뿐 아니라 가족을 빈곤상황에 빠지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울한 지표들.

OECD 2015년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46% 전체 노인의 절반 가까이가 빈곤층에 해당한다. 즉 2명에 한명은 빈곤하다는 말이다.
이 중에서도 절대빈곤율(최저생계비 미만소득수준)이 33%다.
한국은 더구나 평균퇴직연령이 OECD국가중 가장 낮은 49.1세이다. 가장 오래 근무한 주된 일자리에서는 조기 퇴직이 발생하는 반면 경제활동을 완전히 그만두는 실질 은퇴연력이 70세를 넘기면서 OECD 평균보다 7~8세 높다.
노인자살률도 계속올라가고 있는데 예를 들어 질병에 걸린 후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자살하는 노인들이 적지 않은 현상을 두고 자살원인을 질병으로 볼 것인가. 경제. 사회적 인프라 부족으로 부족으로 볼 것인가. 고민할 수도 있다. 자살로 이어지는 회로는 무척 다양하다. 어는 노인 문제와 마찬가지로 섬세하면서도 폭넓은 분석이 필요하다.

여성노인 빈곤의 그늘.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는 계속 심화 중이다.
빈곤의 여성화란 여성의 빈곤은 여성에게 차별적인 사회구조 때문에 발생되는 여성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1978년에 미국에서 나온 개념이다. 남성이 생계부양자로 인식하는 반면 여성은 독립된 개인이 아닌 의존적인 피부양자로만 인식하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여성노인의 빈곤이 주요한 여성문제로 떠오른다. 고령층 인구중 여성 노인이 60%이고 평균수명도 여성이 남성보다 8세 이상 높다. 그에 반해 여성 노인들이 남성노인들보다 더 많은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여성 노인의 92.2%가 그렇다. 만성질환에 시달리면서 더 오래 사는 여성 노인들이 많다는 의미다.

노인 문제중 핵심은 여성노인의 빈곤현상이다. 여성노인은 남성보다 추가 10년을 더 살아야 한다. 남편의 간호는 부인이 하는데 부인의 간호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외롭게 살다가 노후 자금이 부족한 상태에서 질병에 시달리면 스스로 간호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노후 문제는 여성 노인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수업 – 100년의 시간을 보내는 법.

매 순간 무언가를 한다는 것. 시간은 천천히 제 몫을 하며 흐른다. 매일 책 읽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1년동안 300권의 책을 읽었고, 다 읽은 후엔 또다시 정리의 시간을 가진다. 늙어서도 현재 시간을 인생을 마무리 하는데 쓰지 않는다는 것. 매일 새로운 경험들을 기다리고 만끽하고 도전하는 시간이다.

도파민은 새로운 것을 학습할 때, 기분 좋은 보상이 주어질 때 분비되므로 그런 경험을 만들면 생체 시계가 빨라지고 반대로 외부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매일 익숙한 일상만 살다보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없게 되고, 외부의 시간 감각도 의미 없이 빠르기만 하다.강렬한 자극이 생기면 그 기억의 부분 부분을 우리 뇌에서 촘촘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외부 시간도 달리 감각하게 된다. 그래서 은퇴 후 100세까지 주어진 긴 시간동안 노인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아 집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열심히 살아와 노인이 되었는데, 이 사회에 생산성, 경제적 이익을 담당하지 못하게 되자 멸시하는 듯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잔뜩 위축된 상태로 남은 시간을 보낼 순 없다. 10대의 하루나 80세의 하루나 똑같이 다시 오지 않을, 인생의 유일한 시간이라는 걸 노인들조차도 자주 잊는다. 시간 개념을 바로 잡고 노년의 시간에 새로운 경험을 세워보자.

새로운 관계 맺기.

행복학의 대가 애드 디너교수는 대표논문에서 상위 10%의 행복한 사람들이 나머지 사람들과 보인 가장 큰 차이가 ‘관계’에 있음을 밝혔다. 돈이나 학력,지능,성별,나이 등 행복을 좌우하는 여러 조건들이 있지만 이 모든것을 고려해도 행복을 느끼는 개인차는 10~15%정도밖에 예측하지 못한다. 먹고 살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 이후에는 압도적으로 ‘관계’의 영향이 커졌다. 많은 연구에서 상호 신뢰와 사랑을 주는 관계의 유무가 사람들의 삶을 전혀 다른 풍경으로 이끌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보니 ‘노인’이 되어 있는 거에요. 노인이 된 지금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는 거죠. 모두 나를 멸시하거나 무시하는 것 같고, 차별하는 것 같고,들리는 말들은 모두 서러운 말들 뿐이고, 그럴 때일수록 본인이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일을 찾아야해요. 좋아하고 재밌는 일을 하면 마음이 안 늙어요. 마음 따라 몸도 잘 안 아파요. 중요한 건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

“노인은 늙은 결과가 아닙니다. 살아온 것의 결과입니다.죽음을 앞두고 허무하고 허망하게 지낼 게 아니라 잘 익은 열매처럼 점점 더 좋은 향기가 나고 좋은 영양가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러면 평화로워야 해요. 평화로우려면 자기가 행복해야 하고 자기가 기뻐야 해요. 자기 내면 마음이 평화롭지 않으면 이미 사회에 폐를 끼는 사람인 셈입니다. 노인은 반드시 평화로워야 해요.”

스스로 평화롭고 행복하기.

모두들 잘 늙고 싶어한다. 잘사는 것의 기준이 시대나 사람마다 다른 것처름 잘 늙는 것의 기준역시 세대마다 다르다. 남에게 페 끼치지 않고, 젊은 세대를 상대로 꼰대 노릇을 하지 않고 가진 것을 아낌없이 배푸는 게 잘 늙는 것일까? 누군가는 나이듦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잘 늙는 것이라 하고 또 다른 현자는 자기 안을 파고들어 내면을 성숙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걸 잘 늙는 일의 핵심으로 꼽는다. 그런데 한 조사에서 젊은 세대가 노인들에게서 잘 늙음을 변별하는 기준으로 꼽은 것은 놀랍게도 노인의 ‘웃는 얼굴’ 이 있다. 노인의 웃는 얼굴을 불때 우리는 무슨생각을 하는가. 노인은 평화로워야 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부분이다. 노인이 행복하고 노인 자신이 기쁜 삶이 그와 같은 평화로움을 만든다고 그는 말한다.

무엇보다 무조건 오래사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스스로 행복해야 한다. 서둘러 정신적 성장을 멈추는 이들에게는 “너무 일찍 인생을 끝내지 말라” 고 충고도 한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조년의 시간이나 욕망,감정등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저평가하는 사회 분위기에 침잠해 살아간다. 마치 25세의 삶이 70세의 삶보다 중요한 것처럼. 이쯤에서 질문해 봐야 한다. 살아가는 매순간이 개인의 삶에서는 늘 최초이자 돌아오지 않을 시간인데 은퇴 후 앞으로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고민의 무게가 10대,20대가 하는 ‘앞으로 커서 뭐하지?’ 같은 고민의 그것과 크게 다를까? 우리는 모두 처음 살고 처음 늙고 처음 죽는다. ‘어떻게 늙을 것인가’ 라는 질문은 사실 ‘어떻게 살 것인가’ 와 다르지 않고,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 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베이비붐 세대의 높아진 기대수명 달라진 경제상황 학력수준 등은 심리적인 안정과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가지들이 현재수준으로는 만족하기 어렵다. 기존 인식을 바꾸고 통념에 도전하면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노년기를 ‘창의적노화(Creative Aging)’ 라고 회자되는데 이런 달라진 욕구들의 영향이 적지 않다. 창의적노화란 노인 세대의 성장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창조적 활동과 사회참여를 통해 의미 있는 노년을 찾는 제반활동을 의미한다. 더 좁게는 그런 노년의 시간을 촉진할 수 있는 창의적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뜻하기도 한다. 습관이 주는 편안함의 유혹을 떨쳐내고 지금까지의 삶에서 굳어진 인식 습관, 통념의 편안함을 거부하고 새로운 경험을 마다하지 않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

은퇴전에는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했다면 은퇴 후에는 새로운 가치를 찾고 실현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됩니다. 먼저 자기에게 맞는 취미를 즐기는 것부터 시작해서 봉사나 더 가치있는 활동으로 연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취미가 일정한 수익을 내는 일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젊은 세대 다수는 노년이 그리고 노인이 행복하길 바란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노인은 그들이 살아서 반드시 가닿게 될 미지의 대륙이다. 언젠가는 가닿게될 그 대륙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살아갈 조건이 갖추어져 있고 자기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걸 알게될 때 젊은 세대에도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노인 당사자가 주도하는 노년 문화는 노년의 삶을 결정할 뿐 아니라 이처럼 젊은 세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시인 메이 샤튼은 70세가 되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들면 왜 좋을까? 내가 예전 그 어느 때보다 더 나 다울수 있기 때문이다.”

노년이 신노년담론이나 성공적 노화, 액티브 시니어 등에서 강조하는 경제적 생산성과 사회적 기대에서 벗어남으로써 나이 듦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들에게 젊게 살기를 요구할 게 아니라 70대에는 70대의 삶을, 80대에는 80대의 삶을 각각 개인의 기질과 상황에 맞춰 창조할 수 있도록 사회 전체의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젊음의 활력을 최대햔 유지하는게 행복한 노년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늙고 느리고 여러 신체 기관들이 불편해진다고 해도 자기 삶에서조차 ‘쓸데없는’ 존재로 전략해서는 안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렇다 노년기의 자기평가 기준이 ‘쓸모’ 나 ‘돈’이 되어서는 안된다.

노년의 자기내면탐색은 노인 당사자가 원하는 새로운 자아상을 만들어낼수 있다. 이는 노인 당사자가 만드는 세대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자기에게 몰두하는 일상과 당사자가 주도하는 다양한 사회운동이 노년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기억하자.

스스로 삶을 즐기고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누구나 단 한 번 사는 생의 어떤 순간이든 자기 자신으로 살면서 충분히 즐기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걸 지향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노년이라는 시간과 노인이라는 존재가 그런 삶과 욕구 태도에서 배제되어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노인어어서 특별히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가 아니라. 그 모든 삶의 욕구와 태도와 독립성에서 노인이 너무 오래 소외되지 않았나 자문해야 한다.

100년을 어떤 경험으로 채울지 고민하면서 여기, 끝에 다다라서야 우리는 이런 의문을 당당하게 갖게 되었다. 쇠락과 상실, 무지와 빈곤이 노인을 설명할 수 있는 전부인가? 여기서 우리는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나? 대답은 물론 아니오다.

어떻게 살 것인가.

중년인 내게도 노후준비는 까마득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당장 써야할 돈도 부족한 내게 노후 준비를 미리 하라는 말이 어찌 배부른 소리가 아니랴. 대다수의 우리나이또래들이 같은 입장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노인빈곤의 가장 핵심 중 하나가 바로 자녀에 올인하는 희생적 문화라는 것이다. 자녀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자신의 노후는 계획하지 않고 모든 것을 투자하면서 결국 노후엔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또 다른 노후빈곤원인으로 바로 부동산에 편중된 재산이다. 노후에 쓸 현금을 확보하지도 못한채 스스로 파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시간의 개념을 바꾸자.

100세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심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마치 잉여인간처럼 노년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이 정답일까 무기력해진 시간에 경종을 울리고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수 있는지 고민해보자. “늙으면 죽어야지” 가 아니라 “늙어서도 새로운 삶을 살아야지” 라고 말하면 안될까. 노인은 젊은 세대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존재다. 생산적인 일이 아닌 가치 있는 일을 추구하며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노년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남은 인생은 180도 달라진다. 시간은 개인의 역사뿐 아니라 삶의 지혜도 함께 쌓여가는 것이다. 오랜 시간은 그만큼 후손들에게 나눠줄 지혜역시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노인은 죽음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허무한 삶이 아닌 죽는 순간까지 잘 익은 열매처름 향기가 나는 일을 해야 한다” 라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채현국 이사장의 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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