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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언어의 온도

언어의 온도


∙ 제목 : 언어의 온도

∙ 저자 : 이기주

∙ 날짜 : 12월 어느날 ,2017년


말과 글은 머리에만 남겨지는게 아닙니다.

가슴에도 새겨집니다.

마음 깊숙이 꽃힌 언어는

지지 않는 꽃입니다.

우린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당신의 언어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언어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습니다.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저마다 다릅니다. 온기 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줍니다. 세상살이에 지칠때 어떤 이는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고민을 털어내고 어떤 이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건네는 문장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의 언어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무심결에 내밷은 말 한마디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 곁을 떠났다면 “말 온도”가 너무 뜨거웠던 게 아닐까요.

 

더 아픈 사람.

 

일상이라는 바다에서 귀한 물고기를 건져 올린 기분이 든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자신이 겪은 것과 비슷한 상처가 보이면 남보다 재빨리 알아챈다. 상처가 남긴 흉터를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그리고 아파 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아프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어린 손자에게 알려주려고 한 것도 이런 이치가 아니었을까?

 

사랑은 변명하지 않는다.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말의 무덤 언총

그런 날이 있다. 입을 닫을 수 없고 혀를 감추지 못하는 날. 입술 근육을 좀 풀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날. 그런 날이면 마음 한구석에서 교만이 독사처름 꿈틀거린다. 내가 내밷은 말을 합리화 하기 위해 거짓말을 보태게 되고, 상대의 말보다 내 말이 중요하므로 남의 말꼬리를 잡거나 말허리를 자르는 빈도도 높아진다. 언총은 한 마디로 침묵의 상징이다.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걱정이 되어서 하는 이야기인데”

그냥 한번 걸어봤다.

 

주변을 보면 속깊은 자식들은 부모의 이런 속마음을 잘 헤아리는 듯하다.그래서 그냥 한번 걸어봤다는 부모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평소보다 더 살갑게 전화를 받는다. 전화기가 얼굴에 닿을 정도로 귀를 바짝 가져다 댄다.

 

그냥 걸었다.
그냥 보고싶어서..

 

“그냥” 이라는 말은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후자의 의미로 “그냥” 이라고 입을 여는 순간 그냥은 정말이지 그냥이 아니다.

 

우주만한 사연

대지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치고 사연 없는 이가 없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몸뚱아리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우주만 한 크기의 하나쯤은 가슴속 깊이 소중하게 간직한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다만 그러한 사정과 까닭을 너그럽게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은게 현실인듯 하다. 우리 마음속에 그럴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우리 가슴에 그 무엇으로도 매울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일까 가끔은 아쉽기만 하다.

 

헤아림 위에 피는 위로라는 꽃

 

“힘좀 내” 라는 말만 해도 그렇다. 이런 맨트에 기운을 얻는 이도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힘낼 기력조차 없는 사람입장에선 “기운 내” 라는 말처름 공허한 것도 없다. 정말 힘든 사람에게 분발을 중용하는 건 위로일까 아니면 강요일까.

위로는 헤아림 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이다. 상대에 대해 “앎”이 빠져 있는 위로는 되레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대의 감정을 천천히 느낀 다음 슬픔을 달래 줄 따뜻한 말을 조금 느린 박자로 꺼내도 늦지 않을 거라고 본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길.

솔직히 말해, “솔직하기” 참 어렵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한다. “남”을 속이면 기껏해야 벌을 받지만 “나”를 속이면 더 어둡고 무거운 형벌을 당하기 때문이다.

 

후회라는 형벌을

원래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원래 그런 거라니깐” 신통한 문장이다. 마법의 지팡이 같은 이 한마디가 모든 상황을 단 번에 정리한다. 상대가 아무리 얼토당토않은 궤변을 쏟아내도 웬만해선 토를 달 수 없다. “그게 아닌 것 같은데요?” 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순간 자칫 항명 파동으로 긴급소환될수도 있다. 질문하는 법을 잃어버린 우리에겐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인 듯하다. 순응 아니면 체념이다.

질문 만으로 현실의 문제를 일시에 해소할 수는 없다. 다만 질문은 답을 구하는 시도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좋은 질문은 무엇이 문제인지 깨딷게 한다. 그리고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이야 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첫번재 발판인지 모른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라디오나 텔레비전 아나운서는 “2017년이 저물어 갑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간다고 생각하니 조금 허무하기도 하네요” 라는 상투적인 맨트로 방송을 시작할 테고 라디오 에선 “해가 저무는 끝자락 에서 지난 일 년을 돌아보는게 어떨까요” 라는 클로징 맨트로 끝을 맺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 안다. 철저한 자기반성은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숙연한 자세로 과거를 되돌아 봄직하다. 하지만 지나친 자기 비하나 부정은 희망의 싹을 잘라버리는 법.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비관주의로 물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더 나을것도 더 나쁠것도 없는 자신의 삶에 균형을 지금 처름 유지하고 그 와중에 소소한 재미를 찾고 지금 이대로 충분히 행복한 자신만의 삶의 기술을 쌓아가자.

 

수고 많으셨습니다.

2장 글 지지 않는 꽃

글쓰기는 그림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공통분모는 “그리움” 입니다.누군가를 그리워 하는 마음을 종이에 긁어 새기면 글이 되고, 그러한 심경을 선과 색으로 화폭에 옮기면 그림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그리움을 품지 않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닿을 수 없는 인연을 향한 아쉬움, 하늘로 떠나보낸 부모와 자식에 대한 애틋한 마음,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같은 것은 마음속에 너무 깊게 박혀 있어서 제거할 방도가 없다. 글은 여백위에만 남겨지는 게 아니다. 머리와 가슴에도 새겨진다. 마음 깊숙이 꽃힌 글귀는 지지 않는 꽃이다. 우린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는다. 때론 단촐한 문장 한 줄이 상처를 보듬고 삶의 허기를 달래기도 한다.

 

채 아물지 않는 그리움은 가슴을 해집고 돌아다니기 마련이다. 그러다 그 그리움의 활동반경이 넒어지기라도 하면 낙서라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견딜 수 있기에..

 

누군가에겐 전부인 사람.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해 주세요.

이곳을 청소해 주시는 분들.

누군가에겐 전부인 사람들입니다.

인간이해에 대한 천박한 지식으로 사람을 대했던 과거가 부끄러운 지는 순간이다.

라이팅은 리라이팅.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일은 고치는 행위의 연속일 뿐이다.문장을 작성하고 마침표를 찍는다고 해서 괜찮은 글이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날 리 없다. 좀더 가치 있는 단어와 문장을 찾아낼 때까지 펜을 들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지루하고 평범한 일에 익숙해질때 ,반복과의 싸움을 견딜 때 글은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내 안에 너 있다.

연서(戀書) 의 목적은 간단하다. 바로 편지를 읽는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함이다.

연애편지하면 떠오르는 역사적 인물이 많은데 그중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곡가겸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도 그중 한 명이다. 말러의 교향곡5번 중 4악장 아디에토. 감미로운 선율에 귀를 기울이면 이른 아침에 고즈넉한 숲길을 거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 진다.

이 명곡의 탄생배경은 1900년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스타프 말러는 사교모임에서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여인과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트린채 고혹적인 자태로 말러를 맞이한 여인은 알마 신들러. 많은 남자가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주변을 맴돌았다고 한다.

 

그 중 말러도 한 명일 터 ..

저항 할 수 없는 매력에 이끌린 말러는 알마에게 편지를 건네며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친다.

“당신을 향한, 당신을 위한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습니다.”

이거 어디서 들어본 맨트인데..하면서 무릎을 치시는 분 있을 거다.

“파리의 연인” 에서 이동건이 읆조린 대사 “내 안의 너 있다” 가 바로 이 문장을 패러디 한 것입니다.

말러 5번 4악장, 텐슈테트(https://youtu.be/PQKxwA37Q4Y)

불러오는 중입니다...

볼륨을 높이며 말러 특유의 어두운 낭만이 선사하는 위로와 감동을 음미해 본다.

그리고 객쩍은 상상에 빠진다.알마의 치명적 아름다움이 말러의 창작 욕구를 자극했을까? 아니면 사랑에 눈먼 남자의 애절한 마음이 음악에 스며든 걸까?

 

슬픔에게 무릎을 끓다.

삶은 간단하지 않다. 어디 한군데 온전한 것이 없는 날이 있다. 슬픔을 극복하기는커녕 제 몸뚱이조차 추스르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슬픔은 떨칠 수 없는 그림자다. 목슴을 다해 벗어나려 애써보지만 마음대로 될 리가 없다. 그저 슬픔의 유효기간이 저마다 다를 뿐 누군가에게는 잠깐 머물러 있고 누군가에게는 꽤 오래 달라붙어 괴롭힌다. 시인의 말 처름 우린 종종 슬픔에 무릎을 끓는다. 그러나 그건 패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잠시 고개를 조아려 내 슬픔을, 내 감정의 민낮을 들여다보는 과정일 테다.

그러니 섣불리 어슬프게 슬픔을 극복할 필요는 없다. 겨우 그것 때문에 슬퍼하느냐고 누가 그런다면 그냥 듣고 흘리자. 내가 슬퍼하고 싶을 때 내 마음이 흡족하도록 고뇌하고 울고 떠들고 노여워 하자. 슬픔이라는 흐릿한 거울은 기쁨이라는 투명한 거울보다 나를 더 솔직하게 비춰준다.

 

“나를 아는 건” 가치 있는 일이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세상을 균형 잡힌 눈으로 볼 수 있고 내 상처를 알아야 남의 상처도 보듬을 수 있으니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도대체 어른이 뭐지?

 

순수함을 포기하는 건가. 낙관과 비관을 되풀이하면서 현실에 무뎌지는 것인가.아니면 삶의 다양한 가치를 획득해 나가는 걸까. 꿈과 현실의 괴리를 인정하거나 반대로 매워나가는 것일까.그것도 아니면 세상을 다 알아버리는 것?

사실 어른이 되는 것 자체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되는 것보다 진짜 내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한게 아닌가? 고민을 해결하진 못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묽게 희석할 때 꿈에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꿈과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거나 지켜낼 때 우린 ‘어른’이 아닌 ‘나 다운 사람’이 되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의 일.

대구 정동고등학교 2학년 초 부득이 하게 부산경원고등학교로 전학을 간 일이 있다. 전학을 가면 타 학생들에게 기가 죽지않을려고 어깨엔 힘이 미간엔 주름을 늘 달고 다닌다. 한 마디로 꼴리지 않기 위해서. 그러던 어느날 화장실에서 짝꿍이랑 담배를 피우고 수업에 들어갈 무렵 다른아이들은 들어갔는데 마침 교련선생이 화장실로 들어와서 내 잎에서 담배연기 나온걸 보았다.

무섭기로 소문난 선생이라 심장이 쫄깃했다. 한 시간 수업 후 교무실로 내려가 담임에게 인도 되었고, 택배 인도되듯이, 나의 담임선생은 은행원 출신이였는데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항간의 소문엔 은행에서 짤리고 학교로 왔다는 소문이 있었다. 미간을 찌푸린후 이면지 한 장을 꺼내더니 “여기에 니 장점을 써봐” 이 큰 여백에 내 장점이라곤 두 줄이면 충분했다.

주절주절 적었다. 말인지 된징인지 모르게.. 한 참을 읽어보시더니 선생님은

 

“너 처름 가능성이 있는 녀석이 그러면 안된다” 하셨다.

 

난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그 때 좋아졌고 그 표현은 “아직 널 믿는다” 는 말로 들렸다.

교무실을 나서는 도중 혼내지 않는 우리 담임을 교련선생이 불쾌한듯 처다 보는듯 했다.

그때는 몰랐다. 시간이 들어서 알았지만 사람 보는 ‘눈’ 이라는 건 상대의 단점을 들추는 능력이 아니라 장점을 발견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계절의 틈

하나의 계절이 가고 또 다른 계절이 다가올 때, 계절의 틈이 벌어질 때 사람들은 각자의 방편으로 소박한 행사를 치르곤 한다. 어떤 이는 묵혀둔 옷을 꺼내 말끔히 손질하거나 새롭게 수선한다. 의식으로 의식을 거행하는 셈이다. 또 다른 이는 집 청소와 책상정리로 마음에 묻은 얼룩을 닦아낸다.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을 분류하며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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